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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

- 뮤지컬 영웅 Review -

 

. . .

100년 전 중국 하얼빈 역에서의 역사(歷史)를 환기시키는 강렬한 총성과 기차의 굉음으로 뮤지컬 <영웅>은 시작됩니다. 막이 오르기 전 어둠 속 총성이 마치 지금부터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주세요!’라는 강력한 주문처럼 들립니다.

 

 

 

서른 한 살 청년 안중근

 

뮤지컬 <영웅>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이제는 위인이라는 호칭으로 역사 교과서에 화석처럼 굳어 버린 안중근이라는 백 년 전 인물은 이 작품을 통하여 피와 살을 가진 서른 한 살 청년으로 우리 앞에 현현(顯現)합니다.

 

자작나무 숲 단지동맹 결의 이후 이토 저격, 재판, 여순에서의 수감, 그리고 사형집행의 순간까지 역사적 사실의 숨가쁜 전개 속에서 관객들이 보고 느끼는 것은 안중근과 그의 동료들의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뜨거운 동지애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뮤지컬 <영웅> 속 안중근은 만리타국에서 고향과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친구를 따듯하게 안아 주는 가슴 뜨거운 젊은이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에 절절히 고뇌하며 다가 올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뮤지컬 <영웅>이 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가슴 벅차게 만드는 것은 인간 안중근의 모습이 성공적으로 객석까지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안중근과 의군 동료들이 함께 웃고 떠드는 유쾌한 왕웨이의 만두가게 장면과 의거를 앞두고 (두려움과 슬픔을 이겨내고) 모두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정겨운 장면이 다른 어떤 스펙타클한 장면보다도 기억 또렷한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영웅본색

 

 

관객들은 이토 암살 이후의 장면들에서 비로소 영웅 안중근을 목도하게 됩니다.

하얼빈 역의 총격에서 객석의 가장 큰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뮤지컬 <영웅>의 진짜 절정은 진짜 역사의 죄인이 누구인가를 논리정연함으로 당당하고 준엄하게 따져 묻는 재판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중근의 의거에 대한 국제법상 불법적인 재판에서 오히려 안중근이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이고 불법적인 범죄를 조목조목 따져 물어 기소하는 이 장면은 매우 역동적으로 연출되어 통쾌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순 수감 중 일제의 야욕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대동아공영이라는 (망령으로 나타난) 이토의 주장에 동양평화론으로 차분히 하지만 힘있게 응수하는 안중근을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의거에 정당함을 웅변합니다.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을 초월적 위인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리지 않고, 그의 인간적 면모가 보편적 인류애에 상통하는 철학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보다 큰 공감과 깊이 있는 감동을 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윤호진 연출의 전작 <명성황후>에서 스핀오프된 듯 한 설희의 이야기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단순한 민족주의 서사물이 아닌 역사를 살아 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려고 한 연출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참혹하게 살해된 주군의 복수를 다짐했던 그녀가 이안 감독의 영화 <색계>의 여주인공처럼 적에게 매료되는 서브 플롯은 이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를 혼란스럽게 만든 패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영웅과 색계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캐릭터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점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이토에 대한 극의 평가는 선명하지 않고 주저주저하는 느낌을 줍니다.

 

 

빼어난 완성도

 

이미 대다수 저널과 관객이 높은 평가를 했듯이 뮤지컬 <영웅>의 무대 연출은 국내 창작 뮤지컬의 수준을 몇 단계는 업그레이드 시킨 놀라운 스펙타클입니다. 특히 독립의용군과 일제 경찰의 추격 장면은 빼어난 군무와 무대 연출 아이디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숨막히는 긴장감을 자아 냅니다.

 

개막 전 뮤지컬 <영웅>에 대한 높은 관심은 화려한 캐스팅에 대한 기대감에서 시작되었고, 출연배우들은 그 기대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류정한은 절제된 뜨거움으로 부드러운 모습이 보여 줄 때와 강한 신념을 표출할 때를 정확히 알고 연기함으로써 인간 안중근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합니다.(또 한 명의 안중근, 정성화의 연기는 어떠할 지 정말 궁금합니다) 김선영은 궐 안에서의 명성황후를 그리는 첫 노래로 소름 끼치는 감동의 전율을 안겨 주었고, 드라마틱한 요소를 더하기 위한 기능적 캐릭터로 많지 않은 출연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유일무이한 사랑의 발라드를 노래하는 링링 역의 소냐는 뛰어난 표현력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이 대작 뮤지컬에 대한 가장 큰 박수는 스펙타클하고 역동적인 무대 연출과 완벽한 시너지를 보여 준 앙상블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번 무대가 뮤지컬 <영웅>의 초연이라는 점입니다. 이 완벽한 공연을 위해 모든 배우와 스텝이 흘렸을 수많은 땀방울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계속될 뮤지컬 <영웅>의 진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 보겠습니다.

 

 

<뮤지컬 영웅, 2009. 11. 8() 오후 2,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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