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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펑스호의 모험은 컬트가 될 수 있을까?

-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 review -

 

뮤지컬 헤드윅의 팬들에게는 쏭드윅이란 애칭으로 더 친숙한 송용진 씨가 최근 <치어걸을 찾아서>(이하 ‘<치어걸>’)란 요상한 퍼포먼스로 대학로에 자그마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송용진이 연출한 이상한 뮤지컬이란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작품 여러모로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치어걸>이 뮤지컬?

 

먼저 <치어걸>을 뮤지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것부터 망설여집니다.

오디션’, ‘밴디트’, ‘우연히 행복해지다등 기존의 콘서트 형 뮤지컬들은 생생한 라이브 연주를 무기로 관객과 밀착 호흡했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효과적 전달이라는 서사 장르의 대전제를 중심에 두고 있었습니다.

 

 

<치어걸>도 아래와 같은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신종 돼지 독감에 의해 전 세계의 여성이 모두 멸망(이 얼마나 묵시록적인 이야기입니까!)한 후 딕펑스호의 해적 6명이 전설적인 해적 선장 잭 스패너’(!)가 남긴 지도를 가지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름다운 치어걸들이 산다는 전설의 땅 원더랜드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보쉿(bullshit)! 이 키치적인 이야기는 기의(記意)없이 부유하는 기표(記標), 그저 한바탕 농담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치어걸>은 완성된 서사 따위에는 개미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습니다. 해적의 모험담이라는 (분명히 대충 뚝딱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앙상한 뼈대의 컨셉으로 관객을 홀린 이 뻔뻔한 공연은 이후 한판 재미나게 놀아 보자라는 태도로 일관합니다 ^^

그러니까 <치어걸>은 뮤지컬이라기 보단 뮤지컬 컨셉을 아주 살짝 차용한 인디밴드 콘서트입니다.

 

 

 

마이너 정서의 유쾌한 해프닝

 

그래서 <치어걸>이 영 형편없는 퍼포먼스냐 하면 그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정서적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기는 하겠지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공연을 즐기면 매우 신선하고 유쾌한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해적 출연진(송용진과 딕펑스 멤버들)은 공연장에 도착한 관객들의 드레스 코드를 직접 확인하면서 해적선 승선 여부를 판관하고 뱃멀미 약으로 초콜릿을 나눠주는 등 공연 시작 전부터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합니다. ‘이건 머야술렁이면서도 관객들은 뜻밖의 해프닝에 즐거워합니다. 심리적 무장 해제의 시작 ^^

 

 

막내(드러머 박가람)의 여섯 선원 소개로 막을 연 후 처음 몇 곡의 연주 때까지 영 썰렁함을 벗어나지 못 하던 공연의 분위기는 딕펑스호가 첫 번째 위기를 맞이하면서 완전히 반전됩니다. 정부군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한 울트라캡숑 에네르기파’(온갖 육두문자의 조합입니다 ㅋ) 공격에 참여하면서 관객들은 온전히 딕펑스호의 선원으로 거듭납니다.

 

 

 

이제부터는 일사천리.

여섯 명의 해적들이 거의 억지춘향 수준으로 짜맞춘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의 귀여운자작곡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동안 에네르기파에 이어 해피오르가즘 댄스공격까지 함께 한 관객 선원들은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몸바쳐 해적들의 놀이에 환호합니다.

 

딕펑스 해적들은 자신들의 노래 사이 사이 메틀에서 재즈까지 자신들의 연주 재능을 뽐내고 온갖 성대모사로 유연한 예능 감각을 보여 주다가 어느 순간 인디밴드를 표절한 기획 아이돌을 씹어 주는 등 공연 내내 재미나게 놀자는 유희감각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습니다.

 

 

<치어걸>은 한국적 컬트가 될 수 있을까?

 

작년 9월 단돈 50만원의 제작비로 홍대 클럽에 올려졌다가 예상치 않은 관객 호응에 대학로까지 진출했다는 <치어걸> Born Story부터가 ‘B’스럽고 인디스럽습니다.

게다가 절대적인 마이너 취향과 제의에 가까운 열광적 관객 참여 해프닝은 <치어걸>을 한국적 컬트 뮤지컬로 만들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개인적으론 그 전에 앙상하게 컨셉으로만 존재하는 서사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들고 여섯 명의 캐릭터를 보다 입체적으로 손 보아 서사 장르인 뮤지컬의 최소한의 전제를 갖추는 것이 선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아마도 우리의 딕펑스 해적들, 그 따위 사소한것을 신경 쓸 리 없겠지요. 사실 컬트란 건 의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타고 나는 숙명과 같은 것이니까요 ^^

 

(201035일 오후 8, 대학로 라이브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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