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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두 살엔 결혼할꺼야

- 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 Review –

 

작년 여름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달달한 타이틀을 단 미니시리즈에 제법 아끼는 여배우 최강희가 나온다기에 몇 회 챙겨 보다가 팬시한 세트에 샤방샤방한 선남선녀들이 이른바 Cool한 연애질을 펼치는 트렌디물의 흔한 설정에 질려 이내 흥미를 접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올해 초 남한산성’, ‘퀴즈쇼등과 함께 달콤한 나의 도시가 뮤지컬로 만들어 진다는 포털 뉴스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그때 그 드라마에 원작소설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내 생각했지요. ‘그 많은 창작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에 또 한 작품을 보태는구나

 

 

그런데 왠걸, 어쨌든 최소한 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는 가벼운 데이트 용 로맨틱 코미디만은 아니었습니다. 가벼운 공감보다 무거운 의미를 택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나, 그리고 그 선택이 성공적으로 연출되었나 하는 것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지만.

 

 

원작에 대한 몰이해

 

정이현의 원작소설(뮤지컬을 보기 전날 대본소에서 소설을 빌려 읽었습니다)은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도시를 살아 가는 평범미혼’ ‘직장여성인 오은수가 서른 한 살의 나이에 느끼는 겪는 과연 나 지금 괜찮은 걸까라는 불안한 심리와 일상을 재기발랄한 문체로 세심하게 그려냄으로써 오은수와 유사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동년배(혹은 그 주변 나이의) 여성들의 동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는 오은수의 일상의 심리를 조근조근 들려 주기 보다는 이를 결혼에 대한 짓눌린 강박으로 단순하게 치환해 버립니다.

극의 시작과 함께 제일 먼저 (무대 전면 아래 쪽에서 멋들어지게) 등장한 위치선택은 너의 것, 모두 네가 선택한 결과라고 무거운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계몽의 가르침은 극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묵직한 계몽의 목소리와 달리 뮤지컬이 은수(와 수용자의 대부분인 여성 관객)에게 제시하는 선택의 폭이란 것이 고작 미래가 불확실한 연하 꽃미남과 사회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훈남 중 택일입니다. 이천년대의 첫 십 년이 거의 끝나가는 마당에 서른 한 살 미혼 여성의 선택으로 두 명의 상이한 스테레오 타입의 연애(결혼) 상대자를 제안하는 시대착오적 연출이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원작에 대한 해석이 이 정도였다면 차라리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노선을 택했던 것이 열두 배쯤은 더 나은 선택이지 싶습니다.

 

 

그나마 원작소설을 거의 고스란히 따라간 1부는 그렇게 심하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반전을 준비한 2부입니다. 은수의 또 하나의 남자, 영수의 밝혀진 정체가 은수의 정신적 성장의 계기가 되는 소설과 달리 뮤지컬은 영수의 정체를 은수의 환영으로 치부합니다. 이로써 뮤지컬은 서사 장르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식스센스디 아더스와 같은) 스릴러물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하면서 서른 한 살 노처녀의 속물적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고(은수는 그 욕망 때문에 미쳐 버린 것이다! 세상에나 ㅡㅡ;) 나아가 이를 질타하는 교훈극이 됩니다.

 

 

위치 캐릭터

 

한 번의 관람으로 뇌리에 기억될 만큼 인상적인 넘버(몇 가지 상이한 버전으로 노래되는 선택은 너의 것이 그나마 기억에 남는군요)는 없었지만 발라드와 가벼운 모던 락에 가까운 곡들은 전반적으로 듣기에는 좋았습니다. 3층으로 나누어진 무대 세트는 배우들의 동선을 정리하면서 장면의 변화를 관객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시도였으며 다양한 배경으로 영사되는 현실적이면서도 따스한 도시 이미지 또한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위치역의 김우형, 오은수로 분한 박혜나, 그리고 태오 역의 에녹 모두 검증 받은 배우들답게 좋은 노래와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 세 배우의 성실하고 안정적인 퍼포먼스가 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의 가장 큰 미덕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위치 캐릭터는 어떻게든 손을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은수의 얼터에고에서 신(혹은 파우스트 같은 악마?)과 같은 전지적 캐릭터를 넘나 드는 위치의 역할은 너무도 절대적입니다(관객들과 정서적으로 주파수를 맞춰야 할 주인공 오은수의 캐릭터가 위치 캐릭터에 완전히 묻힙니다). 역할을 축소하거나 또는 과감하게 위치 캐릭터를 여자로 변경하여 오은수 내면의 보이스오버가 되도록 하면 어떨까요? 현재 위치의 캐릭터는 이 작품을 지나치게 남성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웨딩펀드>에 이어 <달콤한 나의 도시>로 다시 한번 30대 미혼 여성의 일상과 고민을 뮤지컬 무대에 올린 황재헌 연출의 시도는 이번에도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오은수를 자신처럼 자매처럼 사랑한 소설의 애독자 또는 오은수를 만들어 낸 정이현 작가가 뮤지컬을 어떻게 보았을 지 궁금합니다.

 

 

(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 2009 12 12 3,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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