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영화, 만화, 공연(뮤지컬, 연극) 등 보고 끄적이는 공간 다솜97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98)
영화보고끄적이기 (18)
공연관람단상 (71)
만화망가코믹스 (0)
요즘요런책읽음 (0)
세상만사 (7)
Total
Today
Yesterday

Posted by 다솜97
, |



공연일 - 2010 818() 오후 8

공연장 - 두산아트센터
캐스트 – 송화(이자람), 동호(임태경), 유봉(홍경수), 동호母(이영미), 바니(조영경)



 

1993, 임권택의 서편제

 

군 입대를 한달 정도 앞 둔 1993년 늦은 5월이었을 겁니다. 입대 전에 좋아하는 영화나 실컷 봐야지 하며 온갖 개봉 영화를 섭렵하고 다닐 때였죠. 액션 활극 장군의 아들을 보고 팬이 된 임권택 감독만 믿고 단성사로 향한 저는 제목 참 고답스럽네 생각했던 서편제의 개봉일 조조 티켓 한 장을 손에 들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얼핏 20% 정도가 찬 객석을 보며 큰 기대는 말아야지, 오늘은 예술적 교양이나 고취해 보자했었는데 상영이 끝나 극장에 불이 들어 왔을 때 저는 주체하지 못 할 감정에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지나 진정이 된 후 주변을 둘러 보니 다른 관객들의 사정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서편제신드롬의 시작이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1993년 작, ‘서편제(임 감독님의 모든 작품이 그러했듯이) 남한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 상처받고 부서져 간 패배자들을 아프지만 따스하게 보듬는 작품입니다. ..를 통해 한국인의 한을 제대로 표출했다는 이 영화에 대한 일반의 평가는 지극히 단순한 인상일 뿐입니다. 임권택의 가장 대중적인 걸작, ‘서편제는 분명 한국적인 영상 미학의 정점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소리를 영화적으로 표현하겠다는 그의 예술적 야망은 절반 정도의 성공으로 그치고 말았지요. 사실 영화 서편제에서 관객의 감성을 음악적으로 지배하는 건 득음의 경지에 오른 송화의 소리가 아니라 김수철의 오리지널 스코어입니다. 결국 임권택의 예술적 야심은 이천년대에 들어와서야 춘향뎐을 통하여 성취됩니다.

 

 

2010, 뮤지컬 서편제

 

뮤지컬 <서편제>가 원작 영화와의 경주를 포기한 건 똑똑한 선택이고 또한 당연한 선택입니다. 뮤지컬이란 무대 예술은 영화와는 크게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진 예술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편제>는 영화 서편제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 나지는 못합니다. 또는 의도적으로 영화의 아우라를 끌어 오려 합니다.)



 

<서편제>는 소설(이청준의 단편 청학동 나그네’)과 영화의 서사 일부만을 인상적으로 차용합니다. 그리고 뮤지컬이란 장르에 맞게 재구축을 시도했습니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 내울 정도의 대단히 성공적인 시도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 결과가 가히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적이라는 것, 그 정체성을 뮤지컬로 표현하겠다는 것이 이 작품의 목표였다면 그 것에 대한 평가는 좀 더 냉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서편제>판소리를 소재로 한...입니다.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를 담은 대중적인 뮤지컬로서 <서편제>는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꽤 괜찮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우리 소리, 서편제로 표현되는 뮤지컬 작품을 고민하고 이를 성취하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지금 공연 중인 <서편제>와는 완전히 다른 창조적인 작품이 나왔겠지요 그것이 대단한 성공이든 처참한 실패든 간에.

 

 

시간은 남고 할말은 없고: 서사의 잉여

 

영화와 달리 <서편제>는 송화가 아닌 동호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동호는 의붓아비 유봉(더 나아가 유봉의 소리)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합니다.(이후 그의 절절한 사모곡은 뮤지컬 <서편제>의 서사에 있어 중요한 축이 됩니다)

어머니를 두고 유봉과 경쟁했던 어린 동호는 또다시 의붓누이 송화를 두고 아버지 유봉과 경쟁합니다.(유봉은 결국 소리입니다) 결국 동호는 그가 사랑한 두 여인을 유봉(소리)에게 빼앗기고 홀로 떠나 갑니다. 떠나 간 동호는 팝스타로 성공하지만 득음을 위한 수행을 계속하는 송화와 유봉은 변해 가는 세상 속에서 점점 추락해 갑니다.


 

 

얼핏 영화의 스토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영화와 달리) 송화와 유봉을 떠난 동호가 팝스타가 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뮤지컬이기 때문에 동호는 팝스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서편제의 이야기는 송화의 득음에서 모두 끝난 것입니다. 하지만 뮤지컬 <서편제>는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낼 수가 없습니다. 송화와 동호의 해후까지 남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무언가 볼거리를 관객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결국 동호는 (물론 우리 소리의 대척점에 있는 대중음악을 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그 보다는 좀더 기능적인 필요에 의해) 팝스타가 되어야만 하고 계속해서 송화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넘버를 부르고 불러야만 하는 것이죠.

이것이 뮤지컬 <서편제>의 딜레마입니다. 할 말 다한 인기 드라마의 연장 방송이 지루하기 짝이 없듯이 <서편제> 2부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서도 클럽 테크노 씬은 정말이지 볼썽사나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시대와 전혀 맞지 않는 테크노 음악은 윤일상과 합작한 이지나 연출의 파격으로 친다 하더라도 클럽 한 켠에 요상한 의상을 입힌 송화를 세워 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서편제>가 적극적으로 영화의 아우라를 끌어 온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요. 바로 저 유명한 진도아리랑롱테이크 장면과 송화와 동호의 재회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송화와 동호의 재회 장면이 특별했습니다. 영화에서 송화와 동호가 재회 모습은 마치 운우의 정을 나누는 듯 두 사람의 소리와 북이 어우러졌다고 표현됩니다. 사실 영화에서는 득음한 송화의 노래가 동호의 북과 어우러지는 것을 들을 수 없습니다. 대신 송화와 동호의 얼굴 클로즈업을 연속 교차 편집하면서 김수철의 애잔한 스코어를 들려 줍니다. 임권택 감독은 도저히 득음의 경지를 표현할 길이 없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장면을 뮤지컬 <서편제>은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실제 합주를 들려 주면서 두 사람의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조명으로 표현합니다. 결국 무대를 가득 채워 송화와 동호를 감싸는 환하고 따듯한 빛이 기어이 관객들을 울리고 맙니다. <서편제>의 단 하나의 장면을 꼽으라면 두말 할 나위 없이 이 장면입니다. (이에 못지 않은 장면은 송화의 백발가를 들으며 떠나 가는 유봉의 죽음입니다. 영화에서 없었던 이 장면은 환상처럼 등장하는 동호母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뮤지컬 작곡가 윤일상

 

미니멀한 무대 미술은 탁월했습니다. 흰색을 컨셉으로 오브제를 최소화한 무대는 비움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 주었고 따듯한 느낌의 조명과도 조화를 잘 이뤘습니다. 하늘하늘 날리는 한지 모자이크 칸막이는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배우들의 동선을 정리하는 기능적 역할에도 충실했습니다. , 좌석(사이드)에 따라 칸막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는 점은 어떻게든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됩니다.

 

이지나 연출은 인터뷰를 통해 뮤지컬 <서편제>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요소로 음악을 꼽은 바 있습니다. 그녀는 가요계의 마이다스, 윤일상에게 작곡을 맡김으로써 관객의 정서적 몰입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동시에 국악계의 어린 뮤즈, 이자람을 합류시켜 소재로서의 우리 소리를 공고히 하려 시도했습니다. 국악을 믹스한 윤일상의 다양한 크로스 퓨전 넘버들은 듣는 순간 귀에 착착 붙는 맛은 넘쳐 났지만 그만큼 휘발성이 강한 약점이 있습니다. (공연을 본 지 이틀 정도 지난 시점에서 <서편제>의 모든 넘버가 기억 속에 흐릿해지더군요) 그리고 지나친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이자람 씨의 경우는 그저 이 작품의 소재주의에 소비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 음악의 어떤 부분에서 그녀의 재능이 발휘된 것인지 쉽게 찾아 볼 수가 없네요. (배우로서의 이자람은 물론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녀의 송화는 오정해의 신화적 송화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처연함과 소리에 대한 굳은 의지의 표현만큼은 모자람이 없었으며 몇 장면에서는 전율이 일 정도였습니다)

 

아름다운 스토리와 이자람의 빼어 난 연기, 그리고 비범과 파격을 넘나 드는 흥미로운 연출 등 분명 <서편제>는 대중 뮤지컬 작품으로 단점보다 미덕이 훨씬 많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의도한 한국적뮤지컬이라는 지향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Posted by 다솜97
, |

록 미 아마데우스

- 뮤지컬 모차르트!’ Review –

 

고전 음악의 거장 모차르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85년 오스카를 석권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연기한 톰 헐츠의 경박하기 짝이 없는 기묘한 웃음소리입니다. 체코 출신의 거장 밀로스 포먼이 천재 모차르트와 범인 살리에르의 대결 구도로 풀어 낸 이 영화는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획득했고 이후 모차르트의 대중적 이미지를 강렬하게 결정지어 버렸었죠.


 

뮤지컬 모차르트!’의 공연 소식에 즉각적으로 연상된 것 역시 영화 <아마데우스>와 그 영화 속 모차르트의 모습이었습니다. 역시나 영화 <아마데우스>와 일정 부분 교차되는 지점도 있긴 하지만 뮤지컬 모차르트!’의 이야기는 보다 다층적이고 풍부합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더 슈퍼스타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며 끊임없이 예술과 삶의 자유를 갈구하는 뮤지컬 모차르트!’ 속 볼프강의 모습은 현대의 천재 대중 음악가들과 흡사합니다. 그것도 메인스트림의 슈퍼스타가 아닌 비운의 언더그라운드의 천재들과 많이 닮아 있는 걸 느낍니다. 실제로 현실과 괴리하며 35살의 나이에 요절한 볼프강의 생애에서 주류로의 투항을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커트 코베인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볼프강에게 레게 헤어 스타일과 찢어진 구제 청바지를 부여한 것은 단순히 겉멋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얼핏 영화 <아마데우스> 속 범인 대 천재의 대결을 변주한 것처럼 보이는 콜로레도 대주교와의 대립 역시 사실은 기존 권위에 대한 볼프강의 저항의식을 더욱 강렬하게 보여 주기 위한 장치처럼 보입니다. (제작진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텍스트 바깥의 이야기이지만 이 지점에서 동방신기 멤버 김준수의 볼프강 역 캐스팅이 흥미롭습니다. 권력으로 볼프강을 소유하고 자기 뜻대로 지배하고자 하는 봉건 대주교의 모습에 아이돌 스타를 계약으로 옮아 매고자 하는 현대 거대 자본의 연예기획사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차르트 18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매우 모던한 이야기로 읽혀집니다.

 

한편 뮤지컬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천재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볼프강의 아버지 레오폴드는 자신의 천재 아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고 있지만 때문에 그 이상으로 아들의 재능을 자신의 범주 안에서 훈육하고 재단하려 합니다. 볼프강은 아버지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갈등하고 고뇌하지만 기어이 자신의 삶과 예술을 추구합니다. 아버지가 드리운 커다란 억압의 그늘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 중 하나가 되지만 또한 그 그늘을 벗어 나려는 노력이 그의 정신을 독립시키고 예술을 완성시키는 동력이 되는 것이죠.

 

이렇듯 천재 음악가의 삶을 다룬 팩션 뮤지컬 모차르트는 보편성을 띈 현대적인 이야기로 관객에게 제시됩니다.

 

 

전율의 보컬! 무대와 조명의 마술

 

어찌 보면 볼프강 모차르트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밋밋하게 따라 가는 이 작품에 커다란 감동을 실어 주는 것은 주옥 같은 넘버들과 28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그 곡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입니다.


볼프강에게 더 큰 세상에서 재능을 펼칠 것을 애정으로 충고하는 발트슈테인 남작부인의 노래 황금별은 신영숙의 맑고 풍부한 가창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아들 볼프강에 대한 레오폴드 서범석의 사랑과 훈육의 양가적 감정은 마음 굳게 먹어라에서 절제된 목소리로 하지만 절절하게 표현됩니다. 극 초반 나는 음악으로 음악 신동의 자존을 교만하게 노래한 볼프강 임태경은 자유로운 삶과 예술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토해내는 록 넘버 내 운명 피하고 싶어 1부의 대미를 장식합니다.(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이 뮤지컬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볼프강과 콘스탄체(정선아)의 발라드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가 있어’, 볼프강의 누이 닌넬(배해선)의 애잔한 넘버 왕자는 떠났네등 락과 발라드, 재즈를 아우르는 전곡 모두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 ‘모차르트 모차르트를 위시한 앙상블들의 합창곡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절창입니다.

 

 

타이틀롤부터 앙상블까지 전율의 가창력과 뛰어난 연기 호흡을 보여 주는 이 작품에서 또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건 무대와 조명입니다. 채워야 할 때와 비워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무대 연출과 인물들의 감정과 오케스트라 연주의 리듬을 쫓아서 천변만화하는 조명은 관객들이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 완벽하게 빠져들도록 합니다. 이 놀라운 마술의 지휘자는 우리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역시 탁월한 무대와 조명을 연출했던 유희성 서울시뮤지컬단장입니다.

 

오픈 전부터 여러 이슈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뮤지컬 모차르트!’는 그 관심과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안겨 준 수작임에 틀림없습니다. 매 장면 장면마다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탄성과 박수 소리가 이를 확실하게 증명합니다!

 

<뮤지컬 모차르트!, 2010 1247,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Posted by 다솜97
, |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