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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7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그와 그녀의 사정

그와 그녀의 사정

-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리뷰 -

 

공연 명: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일시: 2011226() 오후 3

공연장: 아트원씨어터 1

캐스트: 김승대(발렌틴), 박은태(몰리나)

 

 

월드컵 4강의 열기가 식어 가던 2002년 가을, 우연히 로드무비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주가폭락으로 졸지에 노숙자로 전락한 화이트컬러 펀드매니저가 마초노동자 게이의 도움을 받게 되고 그와 함께 예기치 않은 동행을 하게 되면서 도저히 소통할 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적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소통불가능의 두 사람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영화 로드무비와 마찬가지로 소통 불가능해 보였던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교조적 혁명가 발렌틴과 꿈꾸는 게이 몰리나, 너무도 다른 두 남자가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갇혀 어쩔 수 없는 동거(?)를 하게 됩니다. 발렌틴에게 몰리나는 정치적 계몽이 필요한 (대상으로서의) 억압받는 성소수자일 뿐입니다. 몰리나는 사랑 또한 정치적 행위라고 이야기하는 이상한발렌틴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공간에는 오직 그 둘만이 있을 뿐입니다. 서로에게 유일한 두 사람은 싫든 좋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에게도 공통의 관심사 한가지는 있었습니다. 몰리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발렌틴에게 자신의 로망과 같은 영화 이야기를 매일매일 조금씩 들려 줍니다. 그런 방식으로 몰리나는 자신의 로맨틱한 환상을 유지하고 발렌틴은 고문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마취합니다.

 

 

두 남자, 영화로 대화하다

 

몰리나가 들려 주는 영화는 캣피플입니다. 우리에게는 나스타샤 킨스키가 주연한 관능적인 호러물(1982)이 유명하지만 극 중 인용되는 캣피플은 자크 투르뇌르 감독의 헐리웃 고전(1942)입니다. 남자와 키스를 하면 표범이 될 것이라는 강박에 빠진 아름다운 여주인공 캐릭터에는 두 사람의 심리 상태(사랑하는 이에게 키스(결국 사랑)를 받고 싶은 몰리나의 욕망과 남자와 키스를 하는 순간 괴물이 될 것이라는 발렌틴의 공포)가 고스란히 투영됩니다.


 

 

흥미로운 건 영화에 대한 두 사람의 상반된 견해입니다. 화자 몰리나는 영화 속 주인공의 의상과 저택의 아름다움을 세세하게 묘사하지만 그런 디테일이 불편하고 지루한 청자 발렌틴은 계속해서 디테일은 빼고!”를 주문합니다. 발렌틴은 정치사회학적으로 텍스트를 분석하려는 반면, 여주인공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도취(동일시)된 몰리나는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의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지나 연출은 몰리나가 꿈꾸듯 이야기를 할 때에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낭만을 더하다가 발렌틴의 제지 때면 이 선율을 끊는 것을 반복함으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을 표현합니다.

 

 

아름다워서 더욱 슬픈 몰리나

 

계속 평행선을 걸을 것 같던 두 사람의 관계를 바꾸는 것은 몰리나의 여성성입니다. 사실 몰리나는 파시스트의 끄나풀로 발렌틴 조직의 정보를 캐기 위해 그와 같은 방에 투옥된 것이었지만 발렌틴에 대한 연민이 사랑으로 바뀌면서 자신을 희생합니다. 공포에 떨며 제발 너희 조직이야기를 내게 하지 마라고 발렌틴에게 애원하던 몰리나가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예감하면서도 그의 부탁을 들어 주고 마는 것이죠. 발렌틴을 사랑한 몰리나와 달리 발렌틴의 몰리나에 대한 감정은 깊은 인간적 연민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결국 발렌틴은 몰리나를 안지만 그 행위에는 사랑이 아닌 여러 복잡한 심리가 담겨 있습니다. 몰리나의 죽음을 알게 된 발렌틴의 자책에 찬 회한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슬픔과는 크게 다릅니다.


 

 

안타까운 건 관객들에게 조차 몰리나가 철저히 타자화된다는 점입니다. 이성애자 발렌틴에 동일시된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동성애자 몰리나를 그저 대상으로만 바라 볼 따름입니다.(, 이는 이성애자인 제 착각 또는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무대 위 몰리나가 한층 더 외롭지 않았을까 가슴이 시리네요.

 

 

극은 온전하게 발렌틴과 몰리나의 대화로 진행되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했습니다.

박은태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랑 받기를 원했지만 항상 거부 당해 온 몰리나의 심리를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그의 눈빛과 손짓 하나 하나에는 몰리나의 로망과 자존이 자연스레 표출되었고 공포에 떨면서도 사랑이란 환상 속에 희생을 결심하는 연기는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에 반해 혁명가 발렌틴을 연기한 김승대에게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정확한 대사 전달이 미흡했고 여러 차례 대사 처리를 실수하면서 극의 흐름을 끊었습니다. 또한 시종일관하는 그의 화난 듯한 얼굴은 정치적 신념에 대한 믿음과 회의라는 복잡다단한 발렌틴의 심리를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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