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천변카바레] 클리쉐로 모자이크한 60년대. 그리고 안개 사나이
공연명 – 뮤지컬 천변카바레
공연일시 - 2010년 11월 14일(일) 오후 4시
공연장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캐스트 – 최민철(춘식/배호), 김철호(몽블랑 등), 말로(정수), 구옥분(순심 등), 배서현(미미 등)
배호(본명 배신웅) 가수
생몰 1942년 4월 24일 ~ 1971년 11월 7일 | 말띠, 황소자리
데뷔 1963년 1집 앨범 '두메산골'
먼저 이번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 가수 배호가 채 서른을 살아 보지도 못하고 20대의 마지막에 스러진 사람이었다네요. 그가 요절한 가수였단 건 알고 있었지만 라디오에서 간간히 들었던 그의 노래,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는 그가 ‘스물아홉 청춘’에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천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천변카바레>는 시리즈 첫 작품인 ‘천변살롱’이 오빠는 풍각쟁이, 나는 열일곱살이에요 등 30년대 만요(漫謠)를 소환하여 당대의 공기를 전하려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40년 전 ‘안개 속으로 떠나 간’ ‘저음이 매력적인 가수’ 배호의 노래를 BGM으로 60년대의 풍경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서울 상경 후 짧은 공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춘식은 낙향 전에 가수 배호의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찾아 간 천변카바레에서 얼떨결에 웨이터로 취직을 하게 되고 찰스란 예명까지 얻게 됩니다. 카바레 삶의 애환에 익숙해질 즈음 밤무대 가수 미미와 사랑에 빠져 고향에서 올라 온 애인 순심까지 버리지만 미미는 미국인 조지를 만나 미국으로 떠나버립니다. 실의에 빠져 매일 술독에 빠져 살던 춘식은 그의 우상 배호의 죽음을 계기로 새로운, 하지만 거짓된 삶을 살게 됩니다.
<천변카바레>의 이야기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안 봐도 비디오’, 신파 멜로의 전형이지만 그렇다고 관객들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릴 만큼 감정선을 자극하지도 않습니다.
서울 상경, 공장 프레스에 잘린 손가락, 아메리칸 드림, 홍등가 매춘부의 순정 등 이 작품은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진 60년대적 클리쉐를 그저 ‘제시’하면서 관객들이 시골 출신 공돌이 ‘춘식’이 아메리칸 드림에 빠진 카바레 웨이터 ‘찰스’로, 그놈의 돈 때문에 망자를 대신한 ‘배호’로, 그리고 배호의 트리뷰트 이미테이션 가수 ‘배후’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60년대의 탁류를 헤쳐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합니다. (70년대부터 본격화 된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은 60년대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물질에 대한 욕망을 추진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가장 익숙한 상황들의 모자이크로 60년대 사회상을 그려 보고자 한 이 작품의 의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습니다. 조각조각 난 상황들이 전체적인 의미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찾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클리쉐의 연발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죠. 더불어 애초에 탄탄한 서사 구조에는 관심도 없었으니 드마라적 재미 또한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결국 남는 건 배호의 노래입니다.
본격적인 극의 오프닝에 앞서 영사된 생전의 그가 노래하는 모습은 내내 이 작품을 지배합니다. 놀라울 만치 배호의 음색에 가까운 ‘저음이 매력적인’ 뮤지컬 배우 최민철이 노래하는 배호의 히트곡들은 재즈 뮤지션 말로의 재해석과 그녀가 이끄는 천변밴드의 재즈 풍 연주에 힘을 얻어 세련되게 재세공되었습니다. 그리고 (펄시스터즈의 패로디가 분명한 ^^) 뻘시스터즈가 부르는 ‘노란 샤쓰의 사니이’, ‘거짓말이야’, ‘키다리 미스터김’은 배호의 애조띤 노래들과 달리 당대의 흥겨움을 전하는 보너스 트랙입니다.
덧붙이는 말:
<천변카바레> 관극 후 집에 돌아 와 인터넷으로 배호의 노래들을 그의 목소리로 다시 들었습니다. 그러곤 이내 20대 젊은 남자가 부르는 노래가 이만큼의 연륜과 감정의 깊이를 담을 수 있다는 데에 감탄했습니다. 34살의 뮤지컬 배우가 부른 같은 노래는 이 만큼 감정을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새삼 오리지널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