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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화, 공연(뮤지컬, 연극) 등 보고 끄적이는 공간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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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3 [뮤지컬] 비.애.비 - 눈물없이 봐 버린 악극, 단종애사

공연명 - 뮤지컬 <비애비 정순왕후>

공연일 - 2010 4 12일 오후 8

캐스트 - 오진영(정순왕후), 신유(단종), 정동근(저구), 황윤선(수양대군)

 

열두 살 나이에 만인지상에 올랐으나 자신의 숙부에 의해 보위를 찬탈 당하고 결국에는 죽임까지 당한 어린 왕의 짧은 생애, 여기에 이른 바 사육신과 생육신의 어린 주군에 대한 절개와 의리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는 단종애사는 완벽한 비극의 드라마입니다. 이 애달픈 역사(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그때마다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은 바 있습니다.

 

지난 8일 첫 무대에 오른 뮤지컬 ..(..)역시 바로 그 조선 역사 상 가장 불쌍한 임금, 단종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애비는 이전의 단종애사를 다룬 서사물들이 주로 단종과 수양대군, 그리고 사육신과 생육신에 초점을 맞춰 충의(忠義)라는 봉건적 주제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던 것과는 달리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주목합니다.

 

 

 

..의 부제는 단종비 정순왕후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영광의 시간만큼이나 짧았던 사랑, 예기치 못한 몰락으로 인한 이별, 기나긴 별리를 이겨낸 절절한 사모. 드라마보다 더 강렬한 드라마의 역사, 비극적 삶과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는 이 이야기는 뮤지컬의 소재로 정말이지 완벽해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훌륭한 소재가 모두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지지는 않는 법이죠.

 

..는 예술적 성취보다는 대중적 호응에 더 큰 관심이 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먼저 그 중심에는 7080세대에게 익숙한 세미 트롯 풍의 넘버들이 있습니다. 세미클래식, ,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일 것이라는 프로덕션의 홍보와 달리 이 뮤지컬의 모든 넘버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살짝 크로스 오버한트롯입니다.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멜로디가 귀에 착착 감기지만 공연을 보고 난 후 기억에 남는 곡은 없습니다. 이는 반복 소비되(어야만 하)는 대중음악의 특징, 초연임에도 공연장에서 OST를 판매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간결하고 평면적인 서사 전개는 또 어떤지요. ‘..는 분명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면서도  주제와 관련되지 않은, 아니 그보다는 프로덕션이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야기들은 모두 가지 쳐내기를 하면서 가능한 쉬운 이야기로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의 서사는 매우 앙상해져 버렸습니다. 또한 ..에는 암시나 복선과 같은 전개가 없습니다. 모든 상황은 등장인물간의 대화 또는 독백을 통하여 필요 이상으로 충분하고 친절하게 설명됩니다.

 

단순하고 친절한 서사와 귀에 착착 감기는 노래들.

..는 뮤지컬이라기 보다는 그와 유사한 토종 무대 장르인 악극에 가까워 보이고 또 이를 의도한 듯 합니다. 그런데 과연 .. (성공한 악극들이 그러했다 듯이)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들 정도의 신파와 통속을 성취한 것인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50대 이상의 관객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 지 그 평가가 자못 궁금합니다만)

 

앞서 ..가 예술적 성취보다는 대중적 호응에 관심이 더 크다고 했지만 그것은 대중적 호응이 예술적 성취보다 나쁜 지향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문제는 ..가 그다지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비극적 사랑이 보는 이의 가슴을 치게 만들지도 못 하고 수양대군의 무자비한 폭정이 분노로 치를 떨게 만들지도 못한 거죠. 이것이 뮤지컬 ..의 안타까운 비극입니다.

 

정순왕후 역을 맡은 오진영 씨의 노래와 연기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기억할 만한 퍼포먼스입니다. 이번 공연으로 처음 접한 그녀의 빼어 난 가창력은 평범한 트롯 넘버마저도 기꺼이 들어 볼 만한 것으로 만들면서 관객들에게 풍부한 정서적 울림을 전달했습니다.

 

 

 

..는 오히려 작품 외적인 면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묘하게도 이 작품의 이야기와 몇몇 장면들이 현재 남한 땅의 정국과 겹쳐 보이는 점이죠. 민심 이반을 두려워한 수양이 단종을 살해하는 것이라던가 수양이 자신의 정치 보위 세력을 이용해 정순왕후와 단종을 애도하는 백성들을 탄압하는 장면들... 애써 연관을 지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현재의 정치 상황이 연상되는 대목입니다. 의도했건(공교롭게도 ..는 수양의 계유정란으로 극을 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던 어떤 면에서 뮤지컬 ..는 시의적절한 풍자극으로 읽혀 집니다. 저만 그런가요 ^^;

 

(2010 4 12일 오후 8,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대극장, 뮤지컬 비..)

위 리뷰는 리뷰전문 사이트 오픈리뷰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openreview.co.kr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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