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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6 [뮤지컬 달콤한인생] 달콤한 인생의 씁쓸한 관객

이 글은 리뷰 전문 사이트 오픈리뷰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openreview.co.kr

 


끝없는 욕망에 사로 잡혀 기형적 삶을 살던 한 남자가 순결한 여인을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집니다. 비루한 욕망과 순수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남자는 진정한 사랑을 통한 구원을 택하지만 그 선택으로 그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참으로 혹독합니다.

 

 

전형적 멜로 서사, 나쁜 남자는 죽음으로 구원받는다

 

매우 익숙한 이야기죠. 80년대 초반 장안의 지가를 올린 최인호의 베스트셀러 불새’(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부터 배창호의 영화 젊은 남자’, 그리고 현재 수목 드라마 경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나쁜 남자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 소비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1980년대, 자본이 사람을 지배했을 때이후로 신데렐라 스토리와 함께 남한 땅의 신화적인 서사로 자리잡았죠.

 

2008년 초여름, 마니아 시청자를 양산시킨 드라마 달콤한 인생역시 나쁜, 젊은남자 서사의 원형을 살짝 변주한 이야기입니다. 이국적 공간에서 만난 극한 상황의 남녀, 이 중 여자가 유부녀라는 조금 다른 설정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고, 다소 간지럽게 느껴지는 이른 바 명대사(?)들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화제가 되었죠.

 

명품 멜로라는 팬들의 찬사와 함께 막장 드라마의 효시라는 혹평도 만만치 않게 들었던 24부작 미니시리즈 달콤한 인생 100분여 뮤지컬 작품으로 재탄생, 무대에 올랐습니다.

 

 

과도한 욕심 속에 정서와 감정이 휘발되다

 

막을 연 뮤지컬 <달콤한 인생>은 독립적 텍스트라기 보다는 드라마의 축약판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호흡이 긴(무려 24부작!) 드라마의 서사 전부를 고스란히 무대로 옮기려고 한 과한 욕심 탓에 비교적 이야기는 잘 요약되었지만 정작 멜로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들의 감정과 드라마의 정서는 뮤지컬 관객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정신 없이 제시되는 상황 정보들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인물들의 감정을 곱씹어 볼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원작의 서사를 재구축하는 과정에서의 뺄셈과 덧셈에 실패했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이준수의 트라우마로 중요한 극의 모티브가 되는 누나 에피소드는 뮤지컬에서 충분한 설명이 어려웠던 점을 감안한다면 과감하게 생략을 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문제 중 하나인 웃음에 대한 강박도 이 작품을 망치고 있습니다. 윤혜진의 남편인 하동원과 이준수의 연인인 홍다애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그리고 빈번하게 희화화되면서 비극이라는 전체적인 극의 정서 톤을 크게 흔들어 버립니다. 심지어 하동원 역의 김태한씨는 로맨틱 코미디의 멀티맨처럼 기능하고 있는데 이 또한 관객들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말았습니다.(김태한이 연기하는 성구와 그의 아버지 강회장은 이 작품에 있어 과잉의 캐릭터입니다)


 

소극장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생각하지 않은 배우들의 동선 및 안무도 문제입니다. 쉴새 없이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배우들의 동선은 산만하기 그지없으며 몇몇 동작이 제법 큰 격렬한 안무도 소극장이라는 좁은 공간과 어울리지 않아 위화감을 자아냅니다.

 

 

반면에 다양한 조명의 변화를 활용한 비선행적 장면 전환이나 무대의 이질적 공간 분할이 유일하게 빛나는 연출 아이디어입니다.


 

준수 이미지에 맞춰 체중을 감량한 것이 틀림없는 최성원씨의 작정한 듯한 열연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상대역(윤혜진)인 이희진씨의 밋밋한 연기 때문에 운명적 사랑의 아우라는 저 멀리에, 오히려 준수가 속을 알 수 없는 작업남 정도로 보일 지경입니다. 그래도 준수의 첫 등장 때 들려 주는 넘버 세상은 내가 그리는 대로 변해요는 최성원의 미성을 만끽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김태한씨의 능청스런 연기와 노래는 역시나 탁월했지만 이번에는 노닐 물을 잘 못 선택한 물고기와 다름이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태한 씨의 퍼포먼스가 뛰어나면 뛰어 날수록 극의 감정과 흐름은 더 크게 망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관객의 감정을 크게 고양시킬 귀가 번쩍 열리는 넘버라도 한두 곡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전곡 모두 평이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뮤지컬 <달콤한 인생>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작품 안에 담고자 했던 과한 욕심이 작품을 망친 케이스입니다. 네 사람의 캐릭터와 그들의 감정에 집중하여 진중하게 극의 밀도를 높이는 노력을 했다면 미스터리와 멜로,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렬한 욕망이라는 주제에 보다 더 깊숙이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뮤지컬 <달콤한 인생>, 2010 7 14일 오후 8, 대학로 예술마당 4 -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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