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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화, 공연(뮤지컬, 연극) 등 보고 끄적이는 공간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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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penreview.co.kr

 


끝없는 욕망에 사로 잡혀 기형적 삶을 살던 한 남자가 순결한 여인을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집니다. 비루한 욕망과 순수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던 남자는 진정한 사랑을 통한 구원을 택하지만 그 선택으로 그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참으로 혹독합니다.

 

 

전형적 멜로 서사, 나쁜 남자는 죽음으로 구원받는다

 

매우 익숙한 이야기죠. 80년대 초반 장안의 지가를 올린 최인호의 베스트셀러 불새’(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부터 배창호의 영화 젊은 남자’, 그리고 현재 수목 드라마 경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나쁜 남자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 소비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1980년대, 자본이 사람을 지배했을 때이후로 신데렐라 스토리와 함께 남한 땅의 신화적인 서사로 자리잡았죠.

 

2008년 초여름, 마니아 시청자를 양산시킨 드라마 달콤한 인생역시 나쁜, 젊은남자 서사의 원형을 살짝 변주한 이야기입니다. 이국적 공간에서 만난 극한 상황의 남녀, 이 중 여자가 유부녀라는 조금 다른 설정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고, 다소 간지럽게 느껴지는 이른 바 명대사(?)들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화제가 되었죠.

 

명품 멜로라는 팬들의 찬사와 함께 막장 드라마의 효시라는 혹평도 만만치 않게 들었던 24부작 미니시리즈 달콤한 인생 100분여 뮤지컬 작품으로 재탄생, 무대에 올랐습니다.

 

 

과도한 욕심 속에 정서와 감정이 휘발되다

 

막을 연 뮤지컬 <달콤한 인생>은 독립적 텍스트라기 보다는 드라마의 축약판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호흡이 긴(무려 24부작!) 드라마의 서사 전부를 고스란히 무대로 옮기려고 한 과한 욕심 탓에 비교적 이야기는 잘 요약되었지만 정작 멜로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들의 감정과 드라마의 정서는 뮤지컬 관객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정신 없이 제시되는 상황 정보들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인물들의 감정을 곱씹어 볼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원작의 서사를 재구축하는 과정에서의 뺄셈과 덧셈에 실패했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 이준수의 트라우마로 중요한 극의 모티브가 되는 누나 에피소드는 뮤지컬에서 충분한 설명이 어려웠던 점을 감안한다면 과감하게 생략을 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문제 중 하나인 웃음에 대한 강박도 이 작품을 망치고 있습니다. 윤혜진의 남편인 하동원과 이준수의 연인인 홍다애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그리고 빈번하게 희화화되면서 비극이라는 전체적인 극의 정서 톤을 크게 흔들어 버립니다. 심지어 하동원 역의 김태한씨는 로맨틱 코미디의 멀티맨처럼 기능하고 있는데 이 또한 관객들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말았습니다.(김태한이 연기하는 성구와 그의 아버지 강회장은 이 작품에 있어 과잉의 캐릭터입니다)


 

소극장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생각하지 않은 배우들의 동선 및 안무도 문제입니다. 쉴새 없이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배우들의 동선은 산만하기 그지없으며 몇몇 동작이 제법 큰 격렬한 안무도 소극장이라는 좁은 공간과 어울리지 않아 위화감을 자아냅니다.

 

 

반면에 다양한 조명의 변화를 활용한 비선행적 장면 전환이나 무대의 이질적 공간 분할이 유일하게 빛나는 연출 아이디어입니다.


 

준수 이미지에 맞춰 체중을 감량한 것이 틀림없는 최성원씨의 작정한 듯한 열연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상대역(윤혜진)인 이희진씨의 밋밋한 연기 때문에 운명적 사랑의 아우라는 저 멀리에, 오히려 준수가 속을 알 수 없는 작업남 정도로 보일 지경입니다. 그래도 준수의 첫 등장 때 들려 주는 넘버 세상은 내가 그리는 대로 변해요는 최성원의 미성을 만끽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김태한씨의 능청스런 연기와 노래는 역시나 탁월했지만 이번에는 노닐 물을 잘 못 선택한 물고기와 다름이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태한 씨의 퍼포먼스가 뛰어나면 뛰어 날수록 극의 감정과 흐름은 더 크게 망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관객의 감정을 크게 고양시킬 귀가 번쩍 열리는 넘버라도 한두 곡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전곡 모두 평이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뮤지컬 <달콤한 인생>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작품 안에 담고자 했던 과한 욕심이 작품을 망친 케이스입니다. 네 사람의 캐릭터와 그들의 감정에 집중하여 진중하게 극의 밀도를 높이는 노력을 했다면 미스터리와 멜로,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렬한 욕망이라는 주제에 보다 더 깊숙이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뮤지컬 <달콤한 인생>, 2010 7 14일 오후 8, 대학로 예술마당 4 -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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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머스트 고 온!

 

 

그 옛날 막강 대영제국의 해가 지지 않았듯이 최근 수년간 장유정 연출의 작품()은 공연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그녀가 차례로 내놓은 이른바 장유정 뮤지컬 삼부작 ! 당신이 잠든 사이(이하 오!당신)’,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는 새로운 캐스트를 거듭하고 대학로 소극장을 순회하면서 끊임없이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라이선스였지만 거의 새롭게 창작된 금발이 너무해의 성공까지)

그 사이 그녀는 국내의 대표적 뮤지컬 시상식 두 곳 모두에서 다수의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며 최근에는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김종욱 찾기가 영화화되는(더하여 본인이 직접 연출을 맡는) 기쁨까지 맛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연이 끝난 후 극장을 떠나는 관객들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행복한 웃음이 장유정 연출이 만들어 낸 창작 뮤지컬의 작지만 큰성공 신화를 완벽하게 대변합니다.

 

이렇듯 관객과 평단 모두를 사로잡는 장유정표 뮤지컬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요?

 

 

장유정, 타고난 이야기꾼

 

 

장유정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들과 스탭의 빼어난 퍼포먼스, 뮤지컬 지기 김혜성의 재기 넘치는 넘버 모두 그녀의 뮤지컬을 빛내는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관객을 웃고 울리는 장유정표 뮤지컬의 가장 큰 힘은 그녀가 직접 쓴 대본의 힘입니다. 장유정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작품에 몰아 담으면서도 탄탄한 구성력과 개별 이야기의 디테일을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것으로 서사의 핍진성을 유지합니다.

 

특히 장유정은 미스터리 구조의 이야기 전개를 무척이나 즐깁니다. ‘김종욱 찾기는 두 남녀 주인공의 김종욱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에 대한 시종일관한 추적이며 형제는 용감했다에서 석봉과 주봉 형제는 오로라라는 신비한 여인(팜므파탈? ^^)이 제기한 아버지의 숨겨진 유산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역시 그녀가 쓰고 연출한) 연극 멜로드라마에서조차 장유정은 타이틀과 달리 감춰진 사건과 관계라는 놀라운 반전을 연출합니다.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미스터리 구조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함과 동시에 끝까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입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장유정의 장기인 미스터리 구조는 !당신에서 가장 도드라집니다.

 

극이 시작되면 최병호가 사라졌다는 경쾌한 오프닝 넘버가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의 시작을 알립니다. 척추마비로 인해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거동이 가능한 602호 붙박이 환자 최병호는 차도 다니기 어려울 만큼 눈이 쌓인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밤 홀연히 사라집니다. 그가 입원하고 있 던 카톨릭 재단의 자선 병원에 원장으로 막 부임한 베드로 신부는 하룻밤 사이에 이 전대미문의 환자 실종사건의 전말을 파헤쳐야 합니다. 이 사건의 주요 참고인(혹은 용의자? ^^) 602호의 동료 환자들은 모두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으며 계속해서 신부탐정베드로의 추리를 지연시키려 노력합니다.

 

대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우리의 탐정베드로 신부는 이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

 

 

식스센스급, 최고의 반전은 뭉클한 감동

 

극 초반 최병호 실종사건에 쏠렸던 관객들의 관심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개별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분산되고 종국엔 , 내가 완전 속았구나!’ 깨닫게 되죠. 하지만 이 속임수는 매우 기분 좋은 유쾌한 속임수입니다.

장유정이 쳐놓은 미스터리의 함정은 언제나 맥거핀에 불과합니다. 그녀 작품의 주인공들과 함께 겹겹의 의문점들을 헤쳐 나가다 관객들이 만나게 되는 것은 (놀라운 반전이 아닌) 언제나 예외 없이 보편적 인간이 가진 따듯한 감성입니다. ‘김종욱 찾기에서 그것은 아련한 첫사랑의 감성이며 형제는 용감했다에서 석봉 주봉 형제가 찾는 것은 숨겨진 대박 유산이 아닌 형제애, 가족애입니다.

!당신에서 관객은 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이 (거칠고 서툴지만) 어떻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지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결국 한바탕 웃고 운 관객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랄까 ^^)

 

 

개성만점 캐릭터의 매력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개성 넘치는 캐릭터 모두가 사랑스럽지만 !당신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아이러니하게도 혼자만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지 못한 유일한 악역(?) 베드로 신부입니다. 특히 ‘yo-yo 잠시만yo! 속사포 랩까지 구사하는 원장실에서의 노래는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는 !당신최고의 넘버 중 하나입니다. 이번 공연에 새로이 베드로 신부로 합류한 최성원은 귀여운(사실 참 불쌍한 캐릭터인데^^;) 연기와 기대 이상의 가창력으로 만족을 주었습니다.

TV와 무대를 오가는 스타^^’ 고세원씨의 (닥터 리를 포함한) 멀티 연기 또한 압권이었습니다. 소극장의 공연 메커니즘을 꿰고 관객들과 완벽하게 호흡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김민주(이길례), 이재경(정숙자) 등 베테랑들의 연기와 노래 또한 나무랄 데가 없었으며 허혜리(김정연), 박란주(최민희, 스프링어웨이크닝의 벤들라 스터디)도 신선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모든 캐릭터가 들려주는 장유정 표 뮤지컬 특유의 휘발성 강하지만 공연을 볼 때 만큼은 귀에 쏙쏙 들어 오는 유쾌하고 위트 넘치는 넘버들은 !당신에서 특히 유효합니다.

 

 

좋은 이야기가 모두 다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장유정의 뮤지컬을 볼 때마다 확신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말>

장유정 연출은 영화 김종욱 찾기로 영화감독 데뷔를 합니다. 보통의 뮤지컬들이 대부분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과 달리 현재와 과거, 현실과 상상을 자유로이 오가는 구성을 장유정의 뮤지컬을 보면 영상적인 연출 감각 또한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신에서도 길례, 정숙자의 과거 회상이 어찌나 자연스럽게 (매우 영화적으로) 연출되는 지 신기할 지경입니다. ^^

 

- 공연일: 2010625() 오후 8

- 공연장: 대학로 예술극장

- 캐스트: 고세원(닥터 리), 최성원(베드로 신부), 이석(최병호), 허혜리(김정연), 김민주(이길례), 이재경(정숙자), 박란주(최민희)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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