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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화, 공연(뮤지컬, 연극) 등 보고 끄적이는 공간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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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8 [뮤지컬 빨래]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본 리뷰는 리뷰전문 사이트 오픈리뷰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openreview.co.kr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조용필의 노래중에서)

 

반짝이는 네온처럼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인구 이천만의 거대도시 서울.

많은 사람들이 부푼 희망과 기대를 품고 이 곳을 찾지만 냉정한 이 도시의 실제 모습은 쉽사리 그들의 꿈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외로움과 좌절 속에서 언제 어디서 왜 여기에 왔는지하는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것을 피곤하게 지켜 볼 따름입니다.

 

서울살이 5년 차 강원도 아가씨 나영과 그 이웃의 이야기, 뮤지컬 빨래가 어느덧 공연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또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 온지 5년 된 나영은 그동안 다섯 번인가 여섯 번인가 직장을 옮겼고 두 번의 짧은 연애를 했습니다. 꿈을 위해 등록했던 야간대학은 포기한 지 오래이며 한때 문학소녀였던 그녀의 소설책들은 이제는 잦은 이사 때의 무거운 짐일 뿐입니다.

고향에서 대학까지 공부한 몽골의 이주 노동자 솔롱고는 가족을 위해 기회의 땅 한국을 찾은 지 벌써 5년이 되었지만 이 땅에서 그는 아직도 인간 이하의 철저한 타자입니다. 욕먹고 매맞으며 무시 당하는 일은 그와 동료들의 일상입니다.

 

 

주인공 나영과 솔롱고 외에도 욕쟁이 주인 할머니, 동대문에서 장사하는 희정 엄마, 그의 연인 구씨까지 뮤지컬 빨래속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생생합니다. 바로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 가는 이웃(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주변 ㅡㅡ;)이며 이들의 삶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공감(共感)은 뮤지컬 빨래의 가장 큰 힘입니다.

나의 이야기, 내 이웃의 이야기인 빨래는 결국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나영이 당하는 불합리한 직장 내 처우에 분노하고 그녀의 고단한 서울살이를 보며 비애에 젖습니다. 착취 당하고 모욕 당하는 솔롱고를 보며 안타까움과 반성을 동시에 생각합니다.

현실을 환기시켜 정서와 사유를 끌어 내는 힘이 뮤지컬 빨래에는 있습니다.

 

, 그렇다고 빨래가 어둡기만 한 우중충한 공연이 아닙니다. 빨래는 팍팍한 현실을 유쾌한 웃음으로 치환하고 삶의 고단함을 넘어 서는 건강한 연대의 힘을 보여 줍니다.

 

 

 

나아가 주인공 나영과 솔롱고에게는 옥상을 로맨틱한 판타지공간으로 허락하기도 합니다. 빨래를 널기 위해 오른 옥상에서 두 사람은 대화와 이해를 통해 발 딛고 사는 땅에서 겪었던 외로움과 괴로움을 한때나마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습니다.

 

 

브라보! 진심이 담긴 연기와 노래

 

시원스레 공연을 여는 서울살이 몇 핸가요는 빨래의 이야기를 함축한 넘버로 공연을 보고 나면 한참 동안 따라 흥얼대게 하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빨래의 넘버는 서울살이 몇 핸가요와 같은 경쾌한 곡들과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애조 띤 곡들로 나눌 수 있는데요.(전자와 후자 모두 가사가 그야말로 예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애조 풍의 곡들, 특히 나영이 자취방에서 몸을 웅크린 채 부르는 서울살이 이야기나 술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르는 왜 사는 게 이렇게 힘들지가 너무도 좋았습니다. 엄태리 씨가 이 곡들을 부를 때 나영의 진정이 절절하게 전달되어 객석에서도 같은 무게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똑같이 느꼈습니다. 노래 뿐 아니라 엄태리 씨의 연기 또한 그냥 그녀가 나영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언제나 모두 빼어난 연기를 보여 주는 빨래의 조연(사실 빨래에서 딱히 주, 조연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합니다만) 배우들이지만 이날의 공연에서 가장 빛난 건 동대문 장사꾼 희정 엄마 역의 이미선씨입니다. 그녀가 연기한 할말 못 할말 없이 직설을 퍼붓지만 누구보다 깊은 속정을 지닌 희정 엄마는 , 맞아 바로 그 아주머니야라고 무릎을 칠 정도의 진짜였습니다.

 

 

빨래가 진짜가 아닌 것이 될 때

 

2007년에 초연된 뮤지컬 빨래는 어느덧 4년이 지난 2010년 현재의 무대에서도 거의 변한 것이 없습니다. 추민주 작가(겸 연출)가 만들어 낸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과장 없는 현실이며 이에 대한 관객의 공감 또한 그대로 입니다.

 

사실 이건 슬픈 일입니다. 뮤지컬 빨래의 감동이 변함없이 유효하다는 이야긴 지난 4년간 이 땅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니까요. 나영이와 솔롱고의 삶은 아직도 여전히 외롭고 고단한 겁니다.

 

뮤지컬 빨래는 정말 좋은, 사랑스런 작품이지만 빨래를 보고서 에이, 저건 옛날 이야기지. 요즘 저런 게 어디 있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현실의 해피엔딩을 조금이라도 빨리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공연명뮤지컬 빨래

공연일 - 2010 4 24() 오후 3

공연장 - 대학로 학전그린 소극장

캐스트엄태리(나영), 정문성(솔롱고), 김효숙(주인 할매), 이미선(희정 엄마), 김태문(서점 사장), 권형준(구씨), 최연동(마이클), 강유미(여직원)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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