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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화, 공연(뮤지컬, 연극) 등 보고 끄적이는 공간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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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 노란 옷의 여인을 쫓는 모험

- 뮤지컬 컨택트’ Review –

 

 

뮤지컬 musical [명사]<음악> 미국에서 발달한 현대 음악극의 한 형식. 음악·노래·무용을 결합시킨 것으로, 뮤지컬 코미디나 뮤지컬 플레이를 종합하고, 그 위에 레뷔(revue)·(show)·스펙터클(spectacle) 따위의 요소를 가미하여, 큰 무대에서 상연하는 종합 무대 예술이다. -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노래가 빠진 뮤지컬을 납득할 수 있을까요? 위의 뮤지컬의 사전적 정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오페라에서 기원한 뮤지컬에 있어 노래는 필요충분조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연초 노래 한 소절 없이 뮤지컬임을 주장하는 작품이 등장하여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8일 국내 초연된 뮤지컬 <컨택트>는 최소한의 대사를 제외하면 온전히 춤으로만 관객과 소통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감히 이야기하면 그 최초의 컨택은 성공적입니다!

 

일단 <컨택트>는 흥미진진합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란한 댄스 퍼레이드는 진정 빼어난 볼거리이며 귀여운 반전의 속임수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들은 꽤나 유쾌합니다.

 

에피소드의 구성부터 영악합니다. 'Swing', 'Did you move?', 'Contact'의 세가지 에피소드는 다음 차례로 갈수록 극의 길이가 길어지고(10->30->70) 과거에서 현재의 시간으로 넘어 오며(18세기->1950년대->현재) 이에 따라 춤의 속도와 세기가 강렬해지는 점층적인 구조로 이어져 있어 관객들의 순차적인 몰입을 돕습니다. 마치 간단한 에피타이저로 식감을 자극하기 시작해서 먹음직스런 메인디쉬로 끝을 내는 코스요리처럼 말이죠.

 

 

첫 번째 에피소드 'Swing'에서는 봉건 귀족들의 유희를 통해 한바탕 성적 판타지를 펼쳐 보입니다. 배우들은 춤이라기 보다는 곡예에 가까운 몸동작으로 (그야말로 서커스 체위라 부를 만 한 ^^;) 온갖 과장되고 노골적인 성행위를 연기합니다. 소프트 포르노의 거장, 틴토 브라스의 작품을 연상시키는(틴토 브라스의 베드신에서도 여자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인상적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관음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하인과의 불륜이라는 대담하고 짜릿한 성적 일탈이 사실은 왕자와 거지 식의 고전적 역할 바꾸기 설정이었다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다소 민망하지만 짜릿한 음담패설.

 

 

(아마도) 마피아 보스 부부의 이태리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를 소재로 한 두 번째 에피소드 'Did you move?'부터 이야기가 좀 더 풍부해집니다. 남편의 억압과 무시 속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는 아내는 잠시 잠깐 남편의 부재를 틈타 심리적 일탈을 감행(?)하는데 움직이지 마라는 남편의 경고가 거듭될수록 아내의 심리적 반항은 점점 대담해집니다. 안무가 출신의 이난영 씨는 경쾌한 발레 연기를 통해 남편의 통제에서 벗어 난 아내의 자유롭고 발칙한 상상을 한없는 가벼움으로 보여줍니다. 발레 솜씨만큼이나 멋진 그녀의 표정 연기는 남편의 무뚝뚝한 표정과 절묘한 대구를 이룹니다. 우아한 막장 드라마.

 

그리고 'Contact'! 2막 전체를 차지하는 70분간의 이 마지막 에피소드가 뮤지컬 <컨택트>가 준비한 코스 요리의 진정한 성찬입니다. 현대인의 허무와 고독 그리고 관계에 대한 갈망을 이렇게 명료하게 이야기하는 공연은 흔치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리도 유쾌하게.

 

 

모든 걸 다 차치하고 노란 옷의 여인과의 컨택트만으로도 관객은 주인공 마이클 와일리 이상의 매혹과 욕망을 느낍니다. 여인에 대한 매혹이 춤추고 싶다는 욕망으로 화하는 것이죠!

노란 옷의 여인, 김주원 씨는 팔을 내뻗는 동작마저 섹시한 그리고 우아한 초월적 매력의 아우라를 발산합니다. 앙상블과의 군무 중 그녀가 맨 앞에 있든지 구석 맨 끝에 있든지 간에 관객의 시선이 오로지 그녀만을 쫓는 것은 그녀의 노란 드레스가 눈에 확 띄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경괘한 스윙과 자이브, 재즈댄스를 추는데도 그녀의 움직임과 표정은 관능적이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노란 옷의 여인에 김주원 말고 또 누구를 생각할 수 있느냐?”라는 연출의 말에 이백프로 감동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주원 씨의 관능적 매혹에 숨이 턱 막힌 관객들은 장현성 씨가 연기하는 마이클 와일리의 슬립스틱한 마임에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춤은 다소 어설펐지만 베테랑 무대 배우답게 쉽지 않은 동선을 노련하게 유영하는 동시에 하룻밤 사이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마침내 삶의 가능성을 찾는 심리를 설득력 있게 연기함으로써 서사의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 줍니다.

 

일상적인 동작뿐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마저도 그럴싸한 춤으로 승화시키는 스트로먼의 안무는 그야말로 대가의 그것이었습니다. <컨택트>에서의 춤은 노래의 부재를 충분히 감당할 만큼 풍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컨택트>를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논쟁은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그런 논쟁 따위는 잊어 버리고 그저 편안하게 이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보면서 고양되는 감정의 즐거움을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뮤지컬 컨택트, 2010 1 106, LG아트센터>

 

사족: 마지막 에피소드 'Contact'에서 와일리의 응답기 전화에 녹음된 목소리와 스윙클럽 인물들의 목소리에 주의해 보시면 재밌습니다^^ 현실과 환상이 어느 지점에서 접촉(Contact)하고 있는지 아실 수 있을 듯.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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