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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Hot, So Sexy and So Stylish

- 뮤지컬 <시카고> Review –

 

 

 

농염한 재즈 선율에 맞춰 블랙 드레스로 무장한 남녀 앙상블들이 끈적한 시선을 교차하며 서로의 몸을 애무하는 듯 아찔한 댄스를 선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뮤지컬 <시카고>는 쉽사리 뿌리치기 힘든 팜므파탈의 유혹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팜므파탈처럼 치명적인 <시카고>의 매력

 

 

 

하지만 팜므파탈의 유혹 이면에는 언제나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관능적 매혹의 달콤함으로 포장된 뮤지컬 <시카고> 속 세상은 실상 간통과 살인, 질투와 시기, 배신과 모략의 온갖 범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어불능의 온갖 욕망들이 무기력한 시스템을 비웃으며 폭주하는 하드보일드한 세계! 이 세계의 질서는 언제나처럼 돈과 권력입니다.

그리고 <시카고>의 섹시한 춤과 노래에 박수와 환호로 열광하는 당신은 이미 이 작품의 믿을 수 없는 매력에 중독되어 록시와 벨마가 벌이는 무시무시한 범죄의 공모자가 되어 버린 겁니다.

 

 

뺄수록 채워지는 <시카고>의 무대

 

2002년 빅히트한 동명의 헐리웃 영화 때문일까요? <시카고>는 왠지 화려한 볼거리 종합세트의 스펙터클한 작품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만,

 

<시카고>에는 최근의 대형 뮤지컬들이 자랑하는 화려한 무대세트는 전혀 없습니다. 기껏해야 두어 번 등장하는 무대 좌우 끝의 사다리와 ‘Cell Block Tango’ 장면의 의자가 전부인데요. 이 또한 독립적 오브제라기 보다는 배우들의 춤과 연기를 보조하는 단순한 소품일 뿐이죠. 관객의 시선을 배우에게 집중시키는 스포트라이트 외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조명 역시 심플하기 그지 없습니다. 마땅한 겉옷도 없이 까만 란제리 패션으로 일관하는(남자 배우들은 상의를 노출한 반라 상태입니다) 배우들의 의상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무대 장치를 포함한 일체의 눈요기거리를 배제할 만큼 <시카고>는 자신만만합니다. 매혹적인 넘버들과 완벽하게 짜인 스타일리쉬한 안무 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을 홀릴 자신이 있는 겁니다.

 

 

벨마와 감옥 안 동료들이 죽어도 싼남편들의 사연을 경쾌한 탱고 음악에 맞춰 노래하며 춤추는 ‘Cell Block Tango’ 장면과 변호사 빌리가 록시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며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We Both Reached for the Gun’ 이 두 장면만 봐도 시카고의 자신감이 결코 무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플한 무대는 관객들이 시선을 온전하게 배우들의 퍼포먼스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결국 뮤지컬 <시카고>의 매력을 완성시키는 것은 배우들입니다.

 

 

빌리, 록시, 벨마. <시카고>의 주인공들

 

요 몇 년 사이 우리는 여러 뮤지컬 작품에서 경탄할 만한 가창력을 보여 준 남자 배우들을 적잖이 만났습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뮤지컬 1세대의 대표배우로 한국 뮤지컬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남경주 씨에게는 그들이 가진 노래를 듣는 것 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가창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배우가 남경주 씨가 가긴 무대 경험과 연륜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요?

남경주의 빌리는 능수능란합니다. 충분한 돈만 주면 그 어떤 범죄도 무죄로 바꿔 놓을 법정의 슈퍼스타, 빌리의 미워할 수 없는 매력, 남경주 씨는 그 유들유들함을 제대로 보여 줍니다.

 

 

록시는 단연 <시카고>의 중심입니다. 동명 영화에선 르네 젤위거(록시)와 캐서린 제타 존스(벨마)의 매력이 팽팽하게 부딪쳤지만 뮤지컬에서는 록시가 단연 최전방 원 톱 공격수입니다. 그만큼 옥주현 씨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이제는 뮤지컬 배우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고 평가 받고 있는 그녀지만 주변 배우들의 강렬한 포스에 주눅이 든 걸까요? ‘Me and My Baby’ 와 같은 솔로 곡의 노래와 춤은 훌륭했지만 벨마, 빌리와 함께 하는 장면에선 어쩐지 한 수 밀린다는 느낌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대적 평가일 뿐 옥주현 씨의 연기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록시는 시카고의 무대를 휘어 잡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벨마, 최정원!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카리스마입니다. ‘All that Jazz’로 시카고의 막을 여는 순간부터 그녀의 춤과 노래 그리고 강렬한 눈빛은 관객의 혼을 쏙 빼 놓습니다. 표정부터 다르다고 할까요, 마흔을 넘긴 배우가 이만큼의 에너지를 발산하다니 정말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최정원 씨는 혹시 절대 늙지 않는 마녀가 아닐까 하고 의심했는데 극 후반부에는 다소 지친 듯 한 모습을 보여 주어 사람이 맞구나 안심을 했습니다 ^^

 

 

<시카고>는 뮤지컬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한 곡, 한 곡이 자기만의 드라마를 가지고 캐릭터의 성격을 기막히게 표현해 주는 넘버들과 그에 조응하는 완벽한 안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소화해 내는 빼어난 배우들만 있다면 화려한 무대, 조명, 의상 등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과잉이 될 수도 있음을 뮤지컬 <시카고>는 보여 줍니다.

 

(2010 1 19일 오후 8,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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