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영화, 만화, 공연(뮤지컬, 연극) 등 보고 끄적이는 공간 다솜97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98)
영화보고끄적이기 (18)
공연관람단상 (71)
만화망가코믹스 (0)
요즘요런책읽음 (0)
세상만사 (7)
Total
Today
Yesterday

연극 푸르른 날에 31년 전 국가가 자행한 학살에서 살아 남은 한 남자와 그 연인의 이야기입니다. 찬란한 청춘의 한 때, 부러울 것 없는 사랑을 나누던 남녀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이별의 파국을 맞이합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남자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녀를 다시 볼 용기를 냅니다.

 

 

 

역사에 대한 객관적 환기

 

푸르른 날에는 감히 신파극의 형식을 빌어 80년 광주의 비극을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이 신파극은 일요일 밤의 개그콘서트처럼 명랑하기까지 합니다.

극 초반 무표정한 배우들의 어색한 문어체 대사, 익살스런 몸 동작에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리면서 심리적으로 무장해제됩니다. 계엄군과의 대립, 도청 사수, 고문 받는 민호 등 고통과 슬픔, 갈등이 고조되는 날 선 장면이 차례로 등장하여 관객을 긴장시키지만 이내 예의 우스꽝스런 대사나 동작이 틈입하면서 팽팽해진 분위기를 이완시켜 버립니다.

 

 

 

이런 방식으로 고선웅 연출은 사실적인 드루마트루기를 배제한 채 관객들이 극에 몰입하고 등장인물들을 동일시하는 것을 차단합니다. 그렇게 관객들은 지켜 보는 자(혹은 방관자)의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이 포지션은 80년 광주에 있어 대부분의 우리에게 지극히 마땅한 자리입니다.

광주의 비극에 그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연극 푸르른 날에는 광주의 비극을 불편한 웃음 속에 객관적으로 환기시키면서 관객의 사유를 이끌어 냅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도청에 모인 시민들이 한 소절씩 단호하게 낭독하는 김남주의 서슬 퍼런 언어(‘학살2’)는 어떤 사실적인 묘사보다 더 생생하게 광주의 진실을 웅변합니다. 역사의 증언으로써 문학의 힘을 빌어 온 이 장면에서 객석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핑크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을 배경음악으로 한 시민군의 힘찬 군무는 불온한 시대에 대한 저항이라는 광주의 정신을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푸르른 날에는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오월 광주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하기나 할까요?)대신에 언어와 사운드, 이미지의 힘을 빌어 오월 광주의 역사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면서 보는 이의 정수를 강하게 내리칩니다.

 

 

광주는 현재 진행의 역사

 

남자 주인공, 여산의 허허로운 웃음 속에 끝을 맺는 이 작품을 본 많은 분들이 과거와의 화해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읽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해 오월 실제 광주의 역사 속에 계셨던 분들 앞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감히 이제 그만 내려 놓으라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31년 전 광주학살은 북한 특수부대의 소행이다!”

광주 항쟁 31주기를 몇 일 앞둔 오월의 어느 금요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본부라는 단체의 대표 서 모씨가 주장한 내용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 단체는 유네스코 본부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 등재를 반대하는 청원서 제출까지 마쳤었다고 합니다.

 

오월은 여전히 부끄러움을 깨치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눈부신 하늘 아래 우리의 모습이 더욱 더 죄스런 계절입니다. 80년 오월 광주의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입니다.

Posted by 다솜97
, |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