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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7 [연극 디너] 사람이... 어떻게 안 변하니?


 

공연장 - 산울림 소극장

공연일 - 2010 9 4() 오후 3

캐스트박정환(게이브), 김영필(), 우현주(캐런), 정수영(베티)

 

 

이제 제법 나이를 먹다 보니 가끔 술자리라도 할라치면 함께 하는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 경력 다년(多年) 차의 유부남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못난 친구를 끔찍이도 아끼는(?) 그들이 술이 두어 순배 돌았을 때 회한에 찬 얼굴로 하지만 단호하게 잊지 않고 던지는 절절한 충고가 있습니다. ‘넌 절대 결혼하지 마라그리고 그로부터 채 1시간이 안되어 그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내 잔에 술을 따르며 어김없이 다시 묻습니다. ‘그래서 넌 도대체 언제 결혼할건데?’

말하자면 연극 <디너>는 기혼남들이 미혼남에게 던지는 결혼에 대한 모순된 충고’ 2단 콤보 세트에 대한 부연 설명 같은 작품입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결혼 생활을 12년 동안 지속한 극 중 두 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타인과 함께 하는 생활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미혼자인 저로서는 두려움에 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

 

 

관계의 종말

 

무대가 밝아지면 이제 막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세 남녀가 보입니다. 한 쌍의 남녀는 얼마 전 다녀 온 이탈리아 여행의 후일담을 즐겁게 떠들고 있고 이를 흘려 듣는 한 여자는 멍하니 다른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바로 게이브-캐런 부부와 그들의 친구 베티입니다. 갑자기 베티가 격한 울음을 터뜨리고 남편, 톰의 외도 사실을 고백합니다. 게이브 부부는 베티를 달래는 한편 (이 자리에 부재한) 톰에게 분노를 느낍니다. (정확히는 캐런의 감정은 커다란 분노, 게이브의 그것은 판단 유보된 안타까움입니다)

거대한 댐의 붕괴는 작은 틈새에서 시작되는 법. 이제 친구로서 삶의 동반자로서 12년을 함께 지내 온 두 부부, 네 사람 간의 관계에 균열이 일기 시작합니다.

 

 

톰과 베티는 부부 관계가 얼마든지 리셋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실행에 옮깁니다. 톰은 베티와 달리 그를 존중할 뿐 아니라 새로운 (아마도 性的)자극을 주는 젊은 항공권예약팀장’, 낸시와의 새로운 출발이 얼마나 행복한 지 죽을 지경입니다. 베티라고 별반 다를 건 없습니다. 톰의 외도에 울고 불고 한지가 얼마나 됐다고 예전에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톰의 친구, 데이빗과 새로운 사랑에 빠집니다. 그것도 데이빗의 가정을 깨면서!

 

이를 바라 보는 게이브-캐런 부부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 부부들의 삶에 있어 안정적 동반자라고 생각해 온 톰과 베스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심지어 베스는 자신에게 헌신해 온 친구 카렌에게 솔직히 너 재수 없었다며 비수를 꽂고 톰은 게이브에게 젊은 여자와 행복한 내가 부럽지 않냐며 자신에게 솔직해 지라고 충고까지 합니다.

 

우정과 신뢰는 붕괴되고 산산조각 난 관계는 게이브와 캐런의 가치관의 뿌리까지 흔들어 댑니다.

 

 

요리 토크쇼

 

다소 어둡고 무거운 소재지만 연극 <디너>는 이를 매우 경쾌하게 요리합니다. 마치 토크쇼처럼 말이죠. 네 명의 등장인물은 각 장면마다 두 명, 세 명씩 등장하여 끊임없이 수다를 떱니다. 그들의 수다는 제법 지적이며 그래서 그만큼 더 우스꽝스럽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자신이 부재한 디너에서 있었던 일들을 캐묻던 톰은 베티가 자신의 외도를 게이브 부부에게 이야기했을까 전전긍긍합니다. 결국 베티의 폭로를 실토 받은 탐은 베티와 육두문자에 손찌검까지 주고 받습니다. 그러더니 갑작스런 섹스! (톰은 나중에 게이브에게 관계가 끝난 상태에서의 섹스가 더 좋았었다고 고백합니다)

 

 

삶은 심각하고 치열하지만 그걸 옆에서 지켜보면 그저 한편의 코미디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마냥 웃으며 볼 수 없는 건 분명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들 삶의 진실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처럼 <디너>에는 여러 차례 식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건 언제나 게이브-캐런 부부는 음식을 만들어 접대하고 톰-베티 부부는 준비된 식사를 즐기기만 한다는 겁니다. 식탁 앞에서의 두 부부, 네 사람의 태도가 그들의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죠.

 

 

톰과 베티가 결혼하기 전의 과거 장면에서 딱 한번 네 사람이 모두 등장하여 즐거운 저녁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마치 TV CF처럼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행복했던 이때, 네 사람 중 누구도 12년 후의 파국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12년의 결혼 생활 동안 무엇이 이들의 관계와 삶을 바꿔 놓은 걸까요? (이 어쩌면 변한 것은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저 숨겨 두었던 것들이 12년 후에 드러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게이브와 캐런 부부는 여전히 서로에 대한 신뢰와 책임을 인생의 최우선 가치로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시원하게 갈라 서 서로 새로운 동반자를 찾은 톰과 베티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구태의연하지만 그만큼 유효한 경구를 빌려 말하자면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니까요.

 

 

연극 <디너>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빛나는 공연입니다. 그 많은 대사에도 불구하고 자로 잰 듯 정확한 감정 표현에 관객들은 절로 극에 집중하고 몰입하게 됩니다. 특히나 정확한 타이밍으로 대사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면 베테랑 배우들임에도 많은 시간을 호흡을 맞춰 무대를 준비해 왔구나 감탄을 하게 됩니다.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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