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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화, 공연(뮤지컬, 연극) 등 보고 끄적이는 공간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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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

- 뮤지컬 에비타 review –

 

 

공연 일시: 2011 12 17() 오후 3 / 201215() 오후 8

공연장: LG아트센터

연출: 이지나

캐스트: 에바 페론(리사/정선아), (이지훈/임병근), 후안 페론(박상원/박상진), 마갈디(박선우)

 

 

Don’t Cry for Me Argentia!

 

아르헨티나가 지구 어느 곳에 위치한 나라인지도 몰랐던 꼬맹이 어린 시절, 라디오(였는지 TV였는지 사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에서 종종 흘러나오던 이 애절한 노래에 매혹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너무도 절절히 느껴지는 노래의 슬픔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나라 전체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궁금해 했던 것 같습니다(하긴 꼬맹이의 기억에 그 노래를 들었던 그 즈음 어느 때, 꼬맹이의 나라에도 온(?) 국민이 슬퍼했던 독재자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ㅡㅡ;) 꼬맹이가 에바 페론이라는 실존 여인이 그 노래 속 애도의 대상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뮤지컬 <에비타>는 아르헨티나를 울린 바로 그 여인, 에바 페론의 극적인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의미였을까? 난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남겼을까?

 

수많은 아르헨티나 민중의 애도 속에 치러진 에바의 성대한 장례식 장면 후 뮤지컬 <에비타>20세기의 신화적 정치인 중 하나로 기억되는 에바 페론에 대한 진실을 고찰하기 위하여 그녀의 어린 시절로 플래쉬백합니다.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난 촌뜨기 소녀, 에바는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아름다운 몸을 무기로 스타배우, 사교계의 꽃을 거쳐 마침내 퍼스트레이디의 자리에까지 오르지만 권력과 대중의 사랑에 대한 그녀의 욕망은 멈출 줄을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끝없는 욕망에 제동을 건 것은 그녀의 찬란한 비상을 이끌었던 아름다운 육신에 찾아 온 죽음의 병마였습니다.

 

 

지저스 에비타 슈퍼스타

 

설명이 필요 없는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음악은 에바라는 욕망의 화신, 그리고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에 완벽하게 조응합니다. 웨버의 환상적인 스코어가 없었다면 뮤지컬 <에비타>는 자칫 에바 페론의 일생을 쫓는 밋밋한 작품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번 라이선스 공연은 에바의 에바에 의한 에바를 위한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지나 연출은 무대 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눈부시게 빛나는 에바를 표현했습니다. 이지나 특유의 미니멀한 무대 연출은 그 어느 때보다 효과적이었습니다. 일체의 오브제를 배제한 채 강렬한 전광 보드를 배경으로 한 에바의 여신 같은 등장, 무대 중앙 가장 높은 계단을 천천히 오르는 여왕의 등극은 이번 <에비타>공연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공연 내내 에바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끊임없이 아낌없이 쏟아집니다. 이는 당대 아르헨티나의 정치 사회적 현실 속 의미와 상관없이 강인했던 한 여인의 거침없는 자기 욕망 추구에 보내는 경의의 표현일 것입니다.

 

 

난 언제나 특별하게 빛이 나

 

뮤지컬 <에비타>의 영화화 당시, 에바 역을 탐낸 당대 헐리우드 스타 여배우들의 경쟁은 그 자체로 큰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이 캐스팅 전쟁의 승자는 위풍당당 팝의 여제 마돈나였습니다!)

이번 라이선스 공연에서 여배우라면 누구라도 탐낼 에바 역의 영광을 차지한 리사와 정선아는 기대에 충분히 값하는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정선아의 퍼포먼스는 누구도 대체 못할 경지의 그것이었습니다. 정선아는 그녀 외의 나머지 배우 모두를 앙상블로 만들어 버리는 마술 같은 무대 장악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맹랑한 소녀에서 치명적 매력의 요부로 권력을 휘두르는 악녀에서 빈민들의 성스러운 천사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그녀의 연기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에바가 그녀 성공의 제물이 된 남자들을 홀리듯 정선아는 압도적인 연기와 노래로 관객을 홀렸습니다.

상대적으로 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면서 에바를 보는 시각의 균형이 깨져 버린 것은 이번 공연의 아쉬움입니다(리사와 이지훈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으나 정선아와 공연한 임병근은 자신의 대사와 노래를 소화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뮤지컬 <에비타>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많은 남자들에게 몸을 던진 창녀도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굳게 자기 최면을 걸었던) 성녀도 모두 에바 페론의 모습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신념에 충실했던 한 여인의 불꽃 같은 성공과 추락을 경의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그녀에 대한 평가와 해석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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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 뮤지컬 쉬러브즈미(She Loves Me)’ 리뷰 -

 

공연 일시: 20111117() 오후 8

공연장: S.H 아트홀

연출: 채훈병

캐스트: 박인배(조지), 정명은(아말리아), 신미연(리터), 이창희(코달리), 한기중(마라첵), 김태웅(시포스)



 

헐리웃 로맨틱코미디의 보증수표 노라 애프론의 유브갓메일을 기억하시나요? 사이버공간에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호감을 느낀 두 남녀가 정작 현실 공간에서는 서로를 몰라 보고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스크류볼 코미디로 탐행크스와 맥라이언 콤비의 호연으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입니다.

 

지난 11월 10일부터 국내 초연되고 있는 뮤지컬 <쉬러브즈미>는 영화 유브갓메일과 사촌지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두 작품 모두 고전 헐리웃 영화 모퉁이가게(The Shop around the Corner)’를 원전으로 하고 있는 것이죠.



유브갓메일이 리메이크 당시 인터넷 시대의 도래에 맞추어 모퉁이가게에서의 연애수단, 펜팔을 이메일로 대체한 것만큼이나 오리지널 영화의 대부분을 뜯어 고친 반면에 뮤지컬 <쉬러브즈미>는 원전에 충실합니다. 아마도 <쉬러브즈미>의 브로드웨이 초연 시기가 1963년이라는 점과 무관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쉬러브즈미>의 국내 초연 역시 그 고풍스런 느낌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무대로 올려졌습니다.

 

 

클래식이라 부르겠어

 

곽재용의 멜로영화 클래식의 여주인공 지혜는 우연히 엄마의 연애편지를 발견하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 클래식이라 부르겠어


<
쉬러브즈미>의 오프닝 곡 좋은아침 마이러브가 끝나자 마자 저 역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소재와 이야기, 음악과 안무, 무대와 의상 등 <쉬러브즈미>는 총체적으로 클래식합니다.



140자 트위터와 실시간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는 요즘 시대에 펜팔로 연정을 키우는 연인이 주인공인 뮤지컬이라니 ^^; 음악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좋았던 시절의 고전 헐리웃 뮤지컬 영화에서나 듣던 가볍고 경쾌한 단조로운 멜로디의 연속!

 

그래서 이 올드패션한 뮤지컬이 영 심심하고 따분한가 하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결말이 훤히 보이는 뻔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사실 로맨틱코미디를 표방한 모든 서사물이 그러합니다^^) 첫만남부터 사사건건 부딪치는 조지와 아말리아의 귀여운 다툼이 사랑스러우며 마라첵 화장품 가게를 배경으로 한 개성 강한 주변인물들의 에피소드에도 소소한 재미가 있습니다.

오로지 오고 가는 편지에 의지하여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상대방을 상상하며 애틋함을 키워가는 펜팔 연애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인스턴트 러브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달콤한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사랑스런 아말리아, 정명은의 재발견!

 

두 남녀 주인공의 좋은 연기와 노래는 이 달콤한 로맨스 뮤지컬의 화룡점정입니다.

 

전작 셜록홈즈로 호평은 받은 박인배 배우는 순수한 사랑을 믿는 남자 주인공 조지 역을 맡아 최선의 연기를 보여 줍니다. 딱딱 부러지는 말투와 부드러운 음색으로 다소 고지식하지만 풍부한 감수성의 훈남, 조지를 적절하게 표현합니다. (아말리아보다 먼저) 아말리아가 자신의 펜팔 상대임을 알게 된 조지 박인배의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은 여성관객들의 팬심을 자극할 만큼 귀엽습니다.



 

하지만 역시 로코물의 꽃은 여주인공! 초롱초롱 눈동자를 빛내며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할까펜팔 상대를 그리는 아말리아 정명은씨의 모습은 가슴이 두근두근 뛸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아말리아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병문안 온 조지를 오해하여 흥분하는 장면과 바로 그 오해가 풀린 후 조지에 대한 감정을 새롭게 느끼는 순간에 부르는 아름다운 넘버는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동안 정명은 배우하면 떠오르던 맨오브라만차의 안토니아(돈키호테의 조카딸) 이미지는 이제 <쉬러브즈미>의 사랑스런 아말리아로 바뀔 것이 확실합니다.

 

 

이 겨울 안성맞춤 로맨틱 뮤지컬

 

조지와 아말리아는 크리스마스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해피엔딩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따듯한 감성의 로맨스 뮤지컬 <쉬러브즈미>는 이 겨울 연인들의 데이트 용 공연으로 훌륭한 선택이 될 듯 합니다.

다만 솔로 관객은 절대 방심하지 말 것! 알콩달콩 사랑이야기에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순간 경악할 수 있습니다.

커플은 할인, 솔로는 정가미라첵 상점의 크리스마스 시즌 세일정책이랍니다. 이런 젠장 ^^;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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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일시: 2011년 9월 16일(금) 오후 8시
- 공연장: 성균관대 새천년홀
- 캐스트: 윤선희(굿닥터), 김혜연(고독해), 이기형(나제비), 백재현(남편), 김동현(정상인)

최근 발표된 독일 드레스덴 대학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럽인구의 약 38%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무려 열 사람 중 네 명이나 (물론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쳤다는 이야긴데요. 이들보다 세상살이가 훨씬 팍팍한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적 정신건강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공중그네에는 별의별 희한한 정신질환자들이 등장하지요. 역시 절대 정상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의사 이라부가 참으로 황당한 방법으로 이들을 치료하는데요. 결국 이라부의 치료법은 병의 원인이 되는 강박을 환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깨도록 하는 일탈적 환경의 제시입니다.

 

메디신(medicine) 뮤지컬(musical), 이름하여 메디컬(medical)이라 명명한루나틱이 주장하는 것도 세상의 정연한 질서로부터의 일탈입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미친 세상을 행복하게 살려면 미치는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뮤지컬 루나틱이 이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은 투박하고 거칩니다.

 

 

 

상연시간 100분 동안 관객들의 폭소는 쉴새 없이 터집니다.

관록의 스타 희극인 백재현씨가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관객들은 자지러지고 김혜연씨의 경이로운 몸 개그 퍼포먼스에 객석은 박장대소로 들썩거립니다. 지난 8년 간 수없이 많은 공연의 시행착오를 통하여 다듬어졌을 웃음의 포인트와 그 리듬은 관객의 배꼽을 빼놓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앙상블과 어우러진 귀엽고 익살스런 군무도 나름 사랑스럽습니다. 많지 않은 넘버도 못 들어 줄 극악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런데 딱 요기까지입니다.

 

나제비-고독해-정상인, 3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뮤지컬 루나틱은 웃음으로 관객을 홀리는데 집중한 나머지 자기가 하고자 했던 말을 잊어 버린 것처럼 보입니다(혹은 관객에게 하고픈 말 따위, 애초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제비의 슬픈 러브스토리는 상투적이며 고독해 할머니의 에피소드는 뜬금없습니다. 관객들은 두 에피소드에서 한껏 웃음을 터트리지만 그 두 사람의 사연에 공감할 그 무엇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어지는 정상인의 어둡고 무거운 사연은 너무도 갑작스러운데 역시 전체적인 극의 맥락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극을 이끄는 역할의 굿닥터는 각 에피소드 사이마다 등장하여 이 슬픈 사연의 주인공들이 미친 후에 얼마나 행복해졌는지를 관객에게 설명하며(그런데 미쳐버린 그들이 무슨 이유로 행복하단 건지?) 여러분들도 다 같이 미쳐보는 것이 어떠냐고 계속해서 주입 교육의 계몽을 합니다.

 

이 계몽은 극이 끝난 후에도 무려 10분 이상 계속됩니다. 커튼콜 이후 다시 등장한 백재현 연출은 감히관객을 상대로 매우 거친 어투의 교육과 훈계를 몇 차례나 반복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작품에 대한 비겁한 변명으로 보일 뿐입니다. 공연이 끝나면 그 작품에 대한 평가는 오롯이 관객의 몫입니다. 오히려 관객들을 붙잡아 놓고서 관극 행태를 평가하는 무례는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뮤지컬 루나틱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깊은 강박에 빠진 신경증 환자처럼 보입니다. 웃겨야 산다는 한없는 가벼움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동시에 무언가 감동과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작품이 되고 싶다는 강박

 

루나틱이 이러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때 루나틱 록앤롤은 더 한층 흥겨워질 겁니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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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일시: 201186() 오후 3

공연장: 한전아트센터

캐스트: 장희영(에이프릴), 김수용(앤드류 제퍼슨), 차순배(아버지), 최유진(미아), 이석우(매튜), 유미(레이첼), 강웅곤(나탈리), 최소영(사만다), 이영은(알리사), 장윤정(제니퍼 힐튼), 김찬호(제임스), J처리(잭슨), 이시훈(대니얼)

 

 

지난 2000년 공개되었던 헐리웃 영화코요테어글리는 섹시한 바텐더들의 화끈한 춤과 경쾌한 음악을 앞세워 MTV세대 관객들의 적잖은 지지를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영화에 삽입되었던 ‘I will survive’ ‘Can’t fight the moonlight’는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구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이름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탑건’, ‘폭풍의질주’, ‘더록’, ‘나쁜친구들’, 최근의캐러비안의해적시리즈까지 주로 액션 장르에서 커리어를 쌓았던 헐리웃 흥행의 연금술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의외의(?) 음악 영화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브룩하이머의 이력에서코요테어글리가 완전히 생뚱맞은 작품은 아닙니다. 브룩하이머는 이미 1983년에 신인 제니퍼 빌즈를 일약 톱스타로 키워낸 플래쉬댄스로 댄스(와 음악) 영화의 재미를 톡톡히 학습한 바 있습니다.

‘코요테어글리’는플래쉬댄스의 리메이크, 재탕이라고 해도 무방한 영화입니다. 두 영화를 동시에 관통하는 흥행코드는 바로 섹시한 여성의 화끈한 댄스(와 적당한 노출)와 잘 만들어진 OST. 대중이 열광한 건 바로 그 두 가지였습니다.(시골소녀의 성공스토리는 최소한의 설정일 따름입니다)

 

 

 

영화코요테어글리의 히스토리를 주저리주저리 떠든 이유는 뮤지컬 <코요테어글리>의 성패가코요테어글리의 짜릿한 쾌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무대로 옮겨 오느냐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코요테어글리>는 재밌습니다.

 

 

객석을 달구는 화끈한 춤과 음악

 

파격적인 의상(12세 이상 관람등급입니다)으로 무장한 우월한 신체 조건의 코요테 걸들을 보는 것부터 꽤나 자극적인 시각적 쾌감이 있습니다. 섹시한 그녀들의 잘 준비된 춤과 퍼포먼스는 기대 이상의 흥분을 자아냅니다.


 

 

극 초반 클럽의 바(Bar) 위에 올라 선 그녀들의 절도 넘치는 춤과 칵테일 퍼포먼스는 무대(클럽) 안 앙상블들의 요란한 흔들림과 잘 어우러지면서 그 유쾌한 기분을 객석까지 전달합니다. 특히 주인공 에이프릴의 본격적인 코요테 걸 가세 후 보여 주는 ‘Unbelievable’쇼는 자리에서 일어 나 환호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호시탐탐 무대를 노리던 코요테어글리 클럽의 남성 서빙들이 화끈한 복근 댄스를 선보일 때에는 여성 관객들의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영화 코요테어글리가 현란한 카메라 무빙과 수많은 컷의 교차를 통한 속도감 넘치는 영상으로 매끈한 섹시함을 만들어 냈다면, 뮤지컬 <코요테어글리> Live의 현장감을 십분 활용하여 객석의 흥분을 자아냅니다.

아쉬운 건 무대와 객석이 너무 멀다는 겁니다. 무대에 좀 더 가까이 스탠딩으로 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면 몇 배쯤은 더 짜릿함을 느꼈을 겁니다.

 

‘Can’t fight the moonlight’을 위시한 영화의 잘 빠진 삽입곡들은 <코요테어글리>에게는 양날의 검입니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대중적 곡이라는 강점과 동시에 뮤지컬 형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리듬과 멜로디의 음악이라는 난점이 함께 하는 것이죠. <코요테어글리>는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I will survive’ ‘Can’t fight the moonlight’ 외 몇 곡만을 취사 선택하여 주인공의 솔로 넘버로 활용할 뿐 나머지는 클럽 댄스 뮤직으로 소비하는 영악함으로 이 문제에서 미끄러져 나갑니다.

 

 

흥분을 잠재우는 엉성한 스토리

 

<코요테어글리>브랜드 라이선스’(영화의 스토리가 아닌 브랜드만을 빌려 오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고 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을 원작 영화에 기대고 있습니다. 시골소녀의 도시 성공 미담(헐리웃이 자주 써먹는 또 다른 형태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단선적 스토리는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뮤지컬에서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뮤지컬 <코요테어글리>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것은 섹시한 춤과 음악이 주는 짜릿한 시청각적 쾌감이니까요.

하지만 단선적 스토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은 했어야 합니다(아니면 극단적으로 설명적인 서사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했습니다) 좌충우돌 삐거덕거리는 엉성한 이야기 전개에 코요테 걸들의 춤과 노래에 애써 들뜬 기분까지 차분해질 지경이 듭니다.

 

하나 더. 무대에 처음 선 듯 어색한 배우들의 연기도 <코요테어글리>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습니다. 웃음 포인트가 분명한 대사들도 효율적인 액팅으로 소화되지 않아 객석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합니다. 극 후반부 아버지가 에이프릴에게 들려 주는 ‘Manhattan henge’는 이 작품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울림이 있는 장면이지만 배우의 역량이 감동을 이끌어 내기에는 크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나마 주인공 에이프릴의 집주인으로 분한 장윤정 씨의 연기가 자잘한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여성 보컬그룹 가비앤제이의 장희영은 주인공 에이프릴 역을 맡아 시원한 노래 솜씨만큼이나 훌륭한 춤과 기대 이상의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아쉬운 건 에이프릴의 남자친구 앤디 역의 김수용입니다. 몇 차례 인상적인 고음을 선보이기는 했으나, 에이프릴을 제외한 이 작품 대부분의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잉여에 가까운 역할로 소비되고 말았습니다.

 

 

뮤지컬 <코요테어글리>는 원작 영화의 자산을 십분 활용한 시청각적 쾌감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그 쾌감이 공허하게 휘발되어 버리는 것을 어쩌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설픈 서사는 던져버리고 시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것에 올인했다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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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가면 그 노래를 잊을까, 그토록 아름다운 선율을

- 뮤지컬 광화문연가 리뷰 -

 

공연 명: 뮤지컬 광화문연가

공연 일시: 2011322() 오후 8

공연장: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캐스트: 윤도현(한상훈 과거), 리사(여주), 김무열(현우), 박정환(한상훈 현재), 김태한(진국), 구원영(정숙), 허규(지용)

 

 

감각(感覺)이 아닌 감성(感性)이 대중의 미의식을 지배하던 80년대, 한국형 팝 발라드를 완성시킨 이영훈과 이문세는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 “시를 위한 시등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발라드 연작은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현재 30, 40대의 집단무의식으로, 절대 잊혀지지 않을 기억이 되었죠.

 


 

3년 전 우리 곁을 떠난 故 이영훈 작곡가의 마지막 꿈이었던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광화문 한복판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그리고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불후의 명곡들이 다시 한번 대중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고 있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광화문연가>의 힘은 단연코 이영훈의 노래들입니다. 그가 창조한 노래들은 한 곡 한 곡이 그 자체로 드라마이며 지금의 주류 대중 가요가 감히 가질 수 없는 풍부한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다소 밋밋하고 성긴 서사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관객들의 정서적 공감을 일백프로 이상 이끌어 낼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이영훈의 노래들입니다.

객석의 대부분을 점유한 30, 40대에게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영훈의 노래들이 익숙하지 않을 스무 살 전후의 관객들까지도 이 작품의 넘버에 울고 웃는 것은 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이영훈 씨는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순간이 계속될 수 있을까

 

이영훈 씨는 사랑(이 한참 진행될 때)의 환희보다는 사랑이 지나간 후의 감정,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흔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그의 음악 인생 전반을 보냈습니다. 마치 떠나 보낸(혹은 떠나 버린) 옛사랑에 대한 애상(哀傷)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정수라 생각한 것처럼 말이죠.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그런 이영훈 씨의 음악 세계에 영감을 준 어떤 사건이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래서 주인공 한상훈은 가상의 이영훈이며 그의 음악 세계를 체화하는 매개입니다. 한상훈의 여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랑은 보는 이를 답답하게 할 만큼 담담하지만 감추어진 절절한 속내는 더욱 더 관객의 가슴을 칩니다.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감정을 격렬하게 토로하기 보다는 절제된(어찌 보면 편집증적인) 감정을 차분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이문세의 툭 던지는 듯 무심한 창법이 더 슬펐던 이영훈의 노래들을 닮아갑니다.

 

 

그녀의 노랫소리뿐

 

오픈 전 트레일러로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소녀’, 그리고 일렉 기타 연주와 함께 휘파람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멋지게 소화한 윤도현은 그가 왜 당대의 보컬 중 한 사람인지를 여실하게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리사.

 


 

제작발표회에서의 윤도현의 상찬(“리사는 이 작품으로 완전히 다른 위상의 가수가 될 것이다”)은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었습니다. 리사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때로는 재지하게, 때로는 블루스 풍으로) 원곡을 새롭게 부르면서도 그 어떤 다른 출연자보다도 원곡의 느낌을 잘 살렸습니다.

특히 1부의 엔딩인 그녀의 웃음소리뿐의 폭발적인 가창이 전달하는 소름 끼치는 전율은 압권이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높디 높은 천장을 뚫을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제법 비장하게 연출된 이 장면을 완전히 집어 삼켰습니다.

 

 

역사에 대한 무례

 

길지 않았던 프로덕션 기간을 생각한다면 무대 연출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화이트 그랜드피아노로 낭만적인 시청각적 감흥에 더하여 무대의 구도를 안정적으로 잡은 것이나, 전작 서편제의 한지 스크린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이동 칸막이 스크린은 충분히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다소 과잉이다 싶긴 하지만 단순함과 현란함을 오가는 다채로운 조명의 변화도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잘 돕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연출들이 이제 너무도 익숙하여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지나 연출도 새로운 시도를 모색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듭니다.

 

하지만 정말 커다란 문제는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광화문연가>는 이영훈 씨의 창작 활동이 만개했던 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대적 아픔까지 극에 녹여 내겠다는 과도한 욕심을 보였습니다. 그 의욕만큼이나 잘 표현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광화문연가>가 당시 학생운동을 그리는 방식은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90년대 초 유행했던 80년대 회고 소설, 사회성 영화의 수준에도 못 미칠 만큼 진정성 없는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극 중 학생 운동을 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정말 나쁜 의미에서) 도식적이고 전형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넘어 희화화되기까지 합니다. 현우의 갈등과 고민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 영미의 자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작품은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어 보입니다(대중음악을 만드는 재능과 매력 만점의 로맨틱한 운동권 리더란 현우의 설정부터 실소를 자아냅니다) 역사와 역사 속 인물, 사건들을 이 작품은 그저 넘버들의 백그라운드로 소비할 뿐입니다.

예술에 있어 윤리의 문제는 절대 그 우선 순위가 낮지 않습니다. 역사에 대한 예의는 상식과 윤리의 문제입니다. <광화문연가>는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생각지 않은 듯 합니다.

 

 

이영훈 씨의 노래가 80년대, 피폐한 대중의 정신을 위무했던 건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당대의 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것도 사실입니다(이영훈의 뮤즈, 이문세 씨는 80년대 대학가에 입성이 금지된 가수였습니다)

 

<광화문연가>는 이영훈 씨와 80년대를 화해시키고 싶었던 걸까요? 만약 그러한 진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보다 사려 깊은 태도와 자세를 견지했어야 했습니다. 이 작품이 이영훈 씨와 그의 음악 세계에 표한 존경의 반만큼이나마 역사에 대해 존경을 보였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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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뮤지컬 코로네이션 볼(Coronation Ball from Starmania)

공연일시 - 201118() 오후 3

공연장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캐스트윤영석(제로 장비에), 손준호(조니 록포르), 정원영(지기), 신영숙(사디아/텔라 스포트라이트), 엄태리(크리스탈), 문혜영(마리 잔느)

 

코로네이션 볼은 프랑스뮤지컬의 특징인 생략과 상징으로 여백의 미학을 강조하면서 노래 한 곡, 한 곡에 스토리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기 내용은 스토리와 노랫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팁입니다

 

공연 전 티켓박스에서 나누어 준 한 장짜리 공연 Tip’에는 간단한 줄거리에 앞서 상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근데 이것 참 이상합니다. ‘생략상징으로 여백의 미학을 강조한다면서 관람 전 친절한 요약 스토리 배포로 스포일러를 자행하는 이율배반이라니. 


 

 

뮤지컬이라고요?

 

공연 Tip’의 존재 이유는 자명합니다. <코로네이션 볼>은 뮤지컬이라는 서사 장르로서 최소한의 이야기 틀을 갖추지 못한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나누어 준 공연 Tip’을 예습하지 않고 공연을 본다면 이거 도대체 무슨 이야긴가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사실 공연 Tip’을 읽고 보더라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만. 대신 인지한 스토리로 무대 위 상황들을 유추 내지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매뉴얼에 의지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뮤지컬 작품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코로네이션 볼> 앞에 붙어 있던 뮤지컬콘서트또는 갈라쇼로 대체하면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사실 코로네이션 볼은 독립적 뮤지컬 작품이라기 보다는 프랑스의 전설적 고전 뮤지컬, <스타마니아>의 컨셉 콘서트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뮤지컬이란 꼬리표를 달고 생략과 상징, 여백의 미학을 운운한 이 작품의 홍보는 조금 심술지게 말하면 관객 기만이란 생각에 조금은 괘씸한 마음까지 듭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네이션 볼>은 꽤나 만족스런 공연입니다! ?

 

 

최고의 배우들이 들려주는 매혹적인 노래들

 

윤영석, 신영숙, 문혜영, 손준호, 엄태리.

이런 최고 수준의 가창력을 지닌 뮤지컬 배우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다니! 도대체 <코로네이션 볼>은 어떤 작품인가? 처음부터 <코로네이션 볼>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압도적인 캐스팅에 있었습니다(더블 캐스팅된 팝 가수 진주베이지도 절창으로 소문난 분들입니다)


 

 

공연을 보고 나니 , 배우들 모두 진심으로 이 작품의 노래들에 매혹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짐작하건대 이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한 무대에 올릴 수 있었던 힘은 뮤지컬 <스타마니아>의 아름다운 넘버에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이 멋진 넘버들을 들려 주기 위해 의기투합 한 것은 아닐 지.

 

올해 뮤지컬 넘버 중 단연 최고의 넘버로 기억될 주옥 같은 음악이란 이야기만큼은 절대 빈말이 아닙니다. 90분 동안 끊임없이 연주되는 열여덟 곡의 노래 중 어느 한 곡 가볍게 들을 노래가 없습니다(유로 팝을 기본으로 락과 클래식을 버무린 스타마니아의 넘버들은 이후 프랑스 뮤지컬 넘버들의 전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독재자 장비에(윤영석)가 자신 인생의 이면, 이루지 못한 꿈을 노래하는 ‘Businessman's Blues’와 마리(문혜영)의 독창으로 시작해 모두의 합창으로 이어지는 ‘Le monde est stone’은 한 순간에 듣는 이를 매혹시키는 곡들입니다.



 

또한 연인의 죽음에 절망한 조니 록포르(손준호)의 절규에 가까운 노래 ‘SOS d’un terrien en detresse’ 를 듣고 있노라면 그 처연함에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모차르트!’, ‘스팸어랏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보여 준 신영숙은 테러집단의 보스 사디아와 쇠락하는 스타 스포트라이트의 상반된 두 배역을 절정의 가창력과 능수능란한 연기로 표현합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부르는 넘버가 가장 적습니다)에도 불구하고 엄태리의 달콤한 목소리와 정원영의 독특한 댄스는 돋보입니다.


 

 

이처럼 국내 뮤지컬 계의 손꼽히는 절창, 여섯 배우가 이 아름다운 곡들을 노래하는 순간을 맛 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스타마니아>의 정식 공연을 위한 뽐뿌질

 

<코로네이션 볼>을 보고 나니 진심으로 뮤지컬 <스타마니아>가 궁금해집니다. 100% 완성도를 다한 뮤지컬 버전을 보고 싶습니다. 장소영 감독이 이끄는 6인조 밴드의 음악도 좋았지만 보다 큰 규모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스타마니아의 아름다운 넘버들을 다시 듣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배우들을 포함하여 이번 <코로네이션 볼> 공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스타마니아>에 대한 뮤지컬 팬들의 열망을 일으켜 그 힘으로 <스타마니아>의 정식 공연을 도모하자’, ‘그건 이 작품의 아름다운 넘버들을 들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머 이런 것이 아니었을지.

 

만약 그랬다면 그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이번 <코로네이션 볼>에 만족한 관객이든 실망한 관객이든 이 아름다운 음악에 대한 경외만큼은 한마음일테니까요.

 

 

사족:

배우들의 의상에는 상대적으로 많이 신경을 쓴 편인데요. 그 느낌이 SF영화 <5원소>에서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보여 준 과장된 패션 스타일과 아주 유사합니다(특히 크리스탈의 하얀 드레스!) , 뮤지컬 <스타마니아>는 아주 먼 미래에 펼쳐지는 범죄와 사랑, 암울한 절망 속에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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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공연 전문 리뷰 사이트 오픈리뷰(www.openreview.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공연명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일시 - 2010124() 오후 3

공연장 샤롯데씨어터

캐스트김준현(지킬/하이드), 소냐(루시), 조정은(엠마), 김봉환(덴버스), 이희정(어터슨)

 

 

왕의 귀환!

 


 

모두가 손꼽아 기다려온 제왕의 귀환입니다. 2008년 공연 이후 2년 만에 돌아 온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연말 공연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뮤지컬 팬들은 사상 유례없는 예매 전쟁으로 왕의 귀환에 경의를 표했으며, 공연 저널은 물론이거니와 공중파 뉴스까지 예외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열광의 중심에 선 배우는 물론 초연 당시 폭발적 카리스마로 이 작품을 제위에 올린 조승우입니다. 여기에 지킬의 또 다른 스탠다드를 완성시킨 류정한, 눈부신 가창력의 홍광호가 함께 하는 이번 공연은 역대 최강의 위용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미 조승우와 류정한의 첫공에 대한 리뷰는 경배하고 경배하라!’ 일색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지킬의 신화 탄생을 지켜 보게 될 듯 합니다.

 

 

김 하이드, 새로운 신화 탄생!

 

지킬을 연기한다는 것은 다른 대형 뮤지컬 작품의 타이틀롤과는 또 다른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킬앤하이드>의 지킬은 그 어떤 작품보다 원톱의 성격이 강한 캐릭터로 극의 갈등을 한 몸에 체화하며 그 강렬한 주제를 온전히 형상화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집니다(모두가 선망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이번 2010 공연에 새롭게 합류한 김준현 배우는 선배 지킬의 아성에 손색이 없는,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개인적으로 <지킬앤하이드>의 소프트 버전이라 생각하는) ‘잭더리퍼에서 부드럽고 안정적인 가창력으로 눈길을 끌었던 김준현 배우는 거칠게 포효하는 악의 화신, 하이드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자신만의 지킬을 차별화했습니다. 지킬과 하이드, 양극단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표현했던 이전 배우들과 달리 김준현은 지킬일 때 조차 희미하게나마 악마적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묘한 불안과 긴장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의 큰 키와 체격으로 더욱 두드러지는 하이드의 야수성은 잔혹한 살인이 계속되는 2부에서 눈부시게 발휘되는데요. 특히 극악한 표정의 하이드가 새로운 삶(New Life)의 희망에 빠진 루시를 등 뒤에서 천천히 안아 주는 장면(그 다음은!!)에선 루시의 자그마한 몸이 더욱 왜소하게 보이면서 안돼! 루시, 제발 도망쳐!’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이드! 김준현은 신사 지킬보다는 거칠디 거친 야수 하이드로 각인될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르는 지킬 박사의 신념에 찬 지금 이순간역시 상당한 매력이 있습니다)

 

 

작년 브래드 리틀의 내한공연까지 3번의 <지킬앤하이드>를 관람하면서 아쉬웠던 건 압도적인 지킬의 캐릭터 때문에 그의 두 연인 엠마와 루시의 극 중 존재감이 희미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루시는 ‘Bring On The Men’에서 강렬한 관능(바로 이 관능에 대한 욕망이 지킬에게서 하이드의 야수성을 끌어내는 Trigger가 아니었을런지)을 뽐낼 기회가 있지만, 엠마는 구원의 여인이라는 전형적 캐릭터에 갇혀 더욱 극의 주변에 설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적 느낌이 강한 김소현, 임혜영 배우와 달리 조정은이라면 능동적인 현대 여성의 새로운 엠마를 보여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그녀가 영국 유학 전 마지막 출연했던 스핏파이어그릴로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던 본인이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에 가장 기대했던 캐스팅)


 

 

약혼식 파티에서 아버지 덴버스 경과 비콘스필드 부인에게 보이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과 삶에 대한 당돌할 정도의 단호한 태도는 그러한 기대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뿐,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지킬의 폭주를 무한한 사랑과 믿음으로 지켜 보기만 하는 엠마더군요. 그녀의 호소력 넘치는 노래에도 불구하고 엠마 캐릭터의 답답함에 대한 갈증은 풀리지가 않네요.

 

소냐는 원숙해진 춤과 노래, 연기로 여유롭게 하지만 여전히 무대에 선 긴장을 잃지 않고 완벽한 루시를 표현합니다. 그녀의 ‘Bring On The Men’은 여전히 섹시하며 ‘A new life’에서 보여주는 새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는 감동적입니다(한가지, 루시의 인상이 너무도 강하여 그녀의 캐릭터가 거리의 여인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지는 건 아닌가 우려가 됩니다. 그녀는 이 작품 전 잭더리퍼에서도 연쇄살인마의 희생양이 되는 거리의 여인을 연기했습니다 ㅡㅡ;)

 

 

업그레이드된 기술적 완성도

 

<지킬앤하이드>의 또 하나의 긍지, 앙상블의 멋진 군무는 더욱 역동적으로 다듬어졌습니다. 샤롯데씨어터의 무대 가로 폭이 좁은 때문일지는 몰라도 보다 빨라지고 한층 정교해진 느낌입니다. 2부 하이드의 본격적 연쇄살인극은 앙상블의 군무와 어우러지면서 관객의 흥분과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는 스펙터클을 연출합니다.


 

 

검붉은 핏빛을 기조로 한 무대는 금방이라도 살인이 벌어질 듯 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덕분에 지킬을 내내 비추는 밝고 환한 사선의 스포트라이트와 ‘Confrontation’에서의 강렬한 조명 대비가 더욱 큰 극적 효과를 발휘합니다. 심플한 세트는 관객의 시선을 온전히 배우들에게 집중시키는 동시에 세련된 무대 전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훌륭한 배우들의 퍼포먼스 못지 않은 기술적 완성도 또한 이번 <지킬앤하이드> 공연에서 도드라지는 점입니다.



 

길 읽고 어둠을 헤매는 인간에게 구원을 주겠다던 강한 신념의 소유자였던 지킬은 결국 그 신념에 대한 자만으로 오히려 자신을 더 큰 어둠 속 괴물로 만들고 파멸하고 맙니다.

 

이번 공연을 보며 <지킬앤하이드>의 절대적 비극은 결코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이 아닐까 새삼 느꼈습니다.

극 초반 아직 신념에 차 있던 지킬은 객석을 향해 이야기합니다. 이건 바로 너의 이야기라고.

항상 내면 깊숙이 도사린 어둠과 분투해 보지만 때때로 자그마한 승리를, 그보다 훨씬 많은 경우 惡 앞에 무릎 끊고 마는 로서는 그 경고를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사족:,

1. 2부 암전 중 번개 섬광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하이드의 등장은 그 자체로 충분히 극적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천둥 소리가 지나치게 커서 관객의 극에 대한 몰입을 끊는 역작용이 있는 듯 합니다.

2.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잭더리퍼는 똑같이 빅토리아 시대, 188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티븐슨이 원작소설인 ‘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를 출간한 것은 1886년이라고 하는데 혹시 인류 최초의 시리얼 킬러, (실존 인물로 1888년에 범죄를 저지른) 잭더리퍼는 스티븐슨의 소설에 자극 받아 모방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요? ^^; 물론 그는 위선에 찬 기득권자를 처형한 하이드와 달리 힘없는 거리의 여인들만 살해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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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뮤지컬 천변카바레

공연일시 - 20101114() 오후 4

공연장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캐스트최민철(춘식/배호), 김철호(몽블랑 등), 말로(정수), 구옥분(순심 등), 배서현(미미 등)


 

 

 

배호(본명 배신웅) 가수

생몰 1942 4 24 ~ 1971 11 7 | 말띠, 황소자리

데뷔 1963 1집 앨범 '두메산골'

먼저 이번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 가수 배호가 채 서른을 살아 보지도 못하고 20대의 마지막에 스러진 사람이었다네요. 그가 요절한 가수였단 건 알고 있었지만 라디오에서 간간히 들었던 그의 노래,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는 그가 스물아홉 청춘에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천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천변카바레>는 시리즈 첫 작품인 천변살롱이 오빠는 풍각쟁이, 나는 열일곱살이에요 등 30년대 만요(漫謠)를 소환하여 당대의 공기를 전하려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40년 전 안개 속으로 떠나 간’ ‘저음이 매력적인 가수배호의 노래를 BGM으로 60년대의 풍경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서울 상경 후 짧은 공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춘식은 낙향 전에 가수 배호의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찾아 간 천변카바레에서 얼떨결에 웨이터로 취직을 하게 되고 찰스란 예명까지 얻게 됩니다. 카바레 삶의 애환에 익숙해질 즈음 밤무대 가수 미미와 사랑에 빠져 고향에서 올라 온 애인 순심까지 버리지만 미미는 미국인 조지를 만나 미국으로 떠나버립니다. 실의에 빠져 매일 술독에 빠져 살던 춘식은 그의 우상 배호의 죽음을 계기로 새로운, 하지만 거짓된 삶을 살게 됩니다.

 

<천변카바레>의 이야기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안 봐도 비디오’, 신파 멜로의 전형이지만 그렇다고 관객들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릴 만큼 감정선을 자극하지도 않습니다.

서울 상경, 공장 프레스에 잘린 손가락, 아메리칸 드림, 홍등가 매춘부의 순정 등 이 작품은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진 60년대적 클리쉐를 그저 제시하면서 관객들이 시골 출신 공돌이 춘식이 아메리칸 드림에 빠진 카바레 웨이터 찰스, 그놈의 돈 때문에 망자를 대신한 배호, 그리고 배호의 트리뷰트 이미테이션 가수 배후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60년대의 탁류를 헤쳐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합니다. (70년대부터 본격화 된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은 60년대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물질에 대한 욕망을 추진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가장 익숙한 상황들의 모자이크로 60년대 사회상을 그려 보고자 한 이 작품의 의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습니다. 조각조각 난 상황들이 전체적인 의미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찾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클리쉐의 연발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죠. 더불어 애초에 탄탄한 서사 구조에는 관심도 없었으니 드마라적 재미 또한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결국 남는 건 배호의 노래입니다.

 

본격적인 극의 오프닝에 앞서 영사된 생전의 그가 노래하는 모습은 내내 이 작품을 지배합니다. 놀라울 만치 배호의 음색에 가까운 저음이 매력적인뮤지컬 배우 최민철이 노래하는 배호의 히트곡들은 재즈 뮤지션 말로의 재해석과 그녀가 이끄는 천변밴드의 재즈 풍 연주에 힘을 얻어 세련되게 재세공되었습니다. 그리고 (펄시스터즈의 패로디가 분명한 ^^) 뻘시스터즈가 부르는 노란 샤쓰의 사니이’, ‘거짓말이야’, ‘키다리 미스터김은 배호의 애조띤 노래들과 달리 당대의 흥겨움을 전하는 보너스 트랙입니다.

 

 

덧붙이는 말:

<천변카바레> 관극 후 집에 돌아 와 인터넷으로 배호의 노래들을 그의 목소리로 다시 들었습니다. 그러곤 이내 20대 젊은 남자가 부르는 노래가 이만큼의 연륜과 감정의 깊이를 담을 수 있다는 데에 감탄했습니다. 34살의 뮤지컬 배우가 부른 같은 노래는 이 만큼 감정을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새삼 오리지널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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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ked Coconut: 코코넛 탄 사나이

 

공연명 - 뮤지컬 스팸어랏 - 아더왕의 성배원정대

공연일 - 2010930() 오후 8

공연장 - 한전아트센터

캐스트 - 정성화(아더), 신영숙(호수의여인), 정상훈(란슬롯), 김재범(로빈), 예성(갈라하드), 김대종(베데베르), 김호(패시)



고전 컬트 코미디 몬티파이튼의 성배를 뮤지컬 무대로 옮긴 무비컬, <스팸어랏>의 국내 초연이 무성한 화제를 만들어 내며 순항 중에 있습니다. 영화 몬티파이튼의 성배는 캠브릿지, 옥스퍼드 등 영국 명문대 출신 작가와 배우들로 구성된 코미디 집단 몬티파이튼의 개그 연작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러닝타임 내내 작렬하는 막장 개그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맘껏 비틀고 조롱하는 영화입니다.




처음 뮤지컬 <스팸어랏>의 공연 소식을 접했을 때 매우 큰 기대와 함께 그보다 아주 조금 큰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접했던 원작 영화의 개그 코드가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자국의 박스오피스를 날려 버렸던 오스틴파워 시리즈, 주성치의 초기 코미디 영화 모두 국내에서는 그다지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죠), 그리고 이 코미디가 유발하는 웃음의 유형이 푸하하하박장대소가 아닌 키득키득과 같은 소극적 반응이기에 뮤지컬이란 무대 장르에 잘 맞지 않을 거란 생각이 그 이유였습니다.

 

예상은 깨질 때 더욱 짜릿한 법!

한국적 크리에이티브로 완벽하게 재창조된 <스팸어랏>은 객석의 관중을 열광적인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습니다.

 

 

지축을 울리는 코코넛 껍질, ‘소리 높이 외친다!

 

<스팸어랏>은 대영제국을 통일한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신의 계시로 벌이는 모험 성배를 찾아서를 서사의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원탁의 기사들과 그들의 영웅적 모험담 따위는 잊어 버리는 편이 좋습니다. 뮤지컬 <스팸어랏>에게 있어 아더왕 이야기는 그저 표면적 컨셉일 뿐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웃기기 위해 일단 갖추고 입어야 할 옷 정도라고 할까요.


 

근엄한 표정의 아더왕이 코코넛을 따가닥거리며 등장하는 장면부터 스멀스멀 웃음 바이러스가 객석으로 퍼져 나갑니다. 짐짓 거만한 표정으로 위대한 영국의 왕임을 자부하는 아더왕은 백성들의 웃음거리로 전락, 조롱 당하기가 일수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그의 정중한 기사 가입 권유는 제비가 코코넛의 대륙간 이동을 할 수 있느냐는 엉뚱한 과학적 토론에 묻혀 버리고(끝까지 버티던 아더는 슬그머니 코코넛을 따가닥거리며 무대 밖으로 빠져 나갑니다^^) 그의 왕위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해 주는 호수의 여인과 엑스칼리버전설은 호수에 빠진 광녀의 해프닝으로 단칼에 평가절하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모험에 합류한 원탁의 기사들도 아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사단 최고의 꽃미남으로 아더와 기네비아를 다퉜다고 알려진 호수의 기사, 란슬롯은 결혼식 습격사건을 계기로 성정체성(게이)을 깨닫게 되고 용감무쌍한 로빈은 적과 마주치자 마자 꽁무니를 빼는 천하의 겁쟁이로 자신의 음유시인들에게 조롱을 당합니다. 여기에 코코넛과 제비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여 아더왕의 측근이 된 지략가 베데베르의 더할나위 없는 멍청함까지 더한다면! 이 인간들, 그야말로 본격 하드코어돈키호테 그룹이라고 할만 합니다^^

 

권위에 대한 조롱이야말로 코미디의 정수일 것입니다. <스팸어랏>은 영미 문화의 신성적 존재들을 시원하게, 거침없이 까대며 코미디의 진수, 그 끝장을 보여 줍니다.(창작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에서 땅바닥으로 추락한 성웅 이순신의 모습에 우리가 얼마나 즐거워 했는지요 ^^)

 

 

웬만해선 이들을 말릴 수 없다!

 

그런데 이 배우들, 원래 이렇게 막무가내로 웃긴 사람들이었나요?

희극인 출신의 정성화 씨나 뮤지컬 판의 소문난 재담꾼 정상훈 씨야 이미 다양한 작품에서 코믹 연기의 재능을 보여 줬지만 반듯한 이미지의 김재범 씨와 신영숙 씨가 이 정도로 망가질 줄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이 외에도 <스팸어랏>의 모든 배우들은 코미디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완벽히 체화한 연기를 보여 줍니다. 심지어 대사 한마디 없는 앙상블마저도 큰 웃음을 책임집니다.



 

일반적으로 코믹 연기를 진지한 정극 연기에 비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제대로 된 코믹 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안면 근육 왜곡의 정도, 개그를 치는 타이밍, 배우들 간에 주고 받는 대사의 합 등을 자로 잰 듯 치밀하게 계산하여 연기하지 않으면 제대로 관객을 웃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감성에 크게 의존하는 정극 연기와 달리 이성적 계산이 핵심인 코믹 연기는 상당한 테크닉이 동반되는 머리의 연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짐작하건대 공연 전 연습량이 엄청났을 겁니다. 쉴새 없이 빵빵 터지는 관객들의 웃음은 이들이 연습실에서 흘린 땀의 부피에 정확히 정비례하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웃는다

 

<스팸어랏>이 원작 영화를 무대로 옮기면서 장착한 비장의 무기는 패로디입니다. 그리고 그 무기는 한국 공연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더욱 큰 힘을 발휘합니다.

 

원탁의 기사에 꽁지 붙어 등장한 자기 자리를 잘못 찾은 라만차의 기사로 가볍게 시작된 패로디 릴레이는 지킬앤하이드,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시카고, 노틀담드파리, 심지어 창작 점프의 캐릭터가 총출동하는 장면에서 폭소의 정점을 찍습니다.


 

 

나아가 뮤지컬 장르의 컨벤션을 패로디 하고(호수의 여인이 등장 때마다 부르는 넘버 아까 한 노래, 했던 그 노래. 맨날 이 노래’ ^^) 심지어 뮤지컬 산업 자체를 패로디합니다. 최근 국내 뮤지컬 산업의 스타 캐스팅을 비꼬는 장면에는 통렬한 웃음과 동시에 <스팸어랏> 역시 아이돌(슈퍼주니어의 예성) 캐스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괴적 비애가 함께 합니다.

 


이 중에서도 최고의 패로디는 배우 정성화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아더왕과 패시의 모습이 너무도 익숙하진 않나요? 정성화는 자신의 대표적 캐릭터인 맨오브라만차돈키호테의 아우라를 고스란히 끌어 온 자기 반영적 패로디의 경지로 코미디 <스팸어랏>‘The Possible dream’을 기어이 완성합니다.

 

 

취향에 따라 <스팸어랏>은 개연성 없는 엉터리, 그야말로 정키 식품의 대표주자 스팸같은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스팸어랏이 ‘Spam a lot’ 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애써 눈에 힘주지 않고 개그콘서트 보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이 작품을 즐긴다면 공연 후 최소 1주일 동안은 시도 때도 없이 실실 웃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겁니다 ^^

 

 

덧붙이는 말.

웃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도 확실하게 느껴지는 건 이 작품의 넘버들이 꽤나 좋다는 겁니다. 이 중 카멜롯 성에서의 카니발 합창과 로빈의 음유시인들이 자신의 주군을 비꼬는 노래는 영화 <몬티파이튼의 성배>에도 나온다는 거 ^^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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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 - 2010710, 11, 13

캐스트신성록-이창용(10), 류정한-이창용(11), 류정한-이석준(13)

 

네 머리 속에 이야기만 수천 개야, 그 중에 하나 골라 쓰면 돼

 

이야기와 이야기, 그리고 또 이야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이하 <스토리>)의 정체성은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토마스 위버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이며 바로 지금 절친 앨빈 캘비의 생을 기리는 이야기(송덕문)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토마스와 앨빈의 우정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 영화 멋진 인생으로 시작되었고 두 친구의 빛나는 유년의 추억 대부분이 앨빈 아버지의 서점 헌책과 새책에서 쌓은 것입니다. 앨빈은 ‘1875년보다 좀 더 멋진 1876년을 만든이야기 톰소여의 모험을 선물하는 것으로 토마스에게 작가로서의 삶을 선물했습니다.

 

<스토리>는 친구 앨빈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망연한 토마스가 그 죽음의 의미와 이유를 묻는 여정입니다.

죽마고우 단짝의 죽음을 접한 토마스의 처음 마음은 죄책감(‘난 앨빈을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어’)입니다. 죄책감에서 벗어 나고자 하는 토마스는 앨빈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찾아 보지만 보지 못한 일(스스로 택했다고 추측되는 앨빈의 죽음)에 대해서 알 수는 없는 법. 그래서 토마스는 죽음의 직접적인 이..를 찾는 대신 앨빈과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려 보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죽음의 의..를 찾으려 시도합니다.


 

 

토마스와 앨빈, 두 친구의 켜켜이 쌓인 추억 이야기로의 여행에 동참했던 관객들은 어느 사이 자신들만의 내 인생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시게 됩니다. 경험한 바 자신하건대 <스토리>는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볼 때 더 많은 이야기가 보이고 그로 인한 가슴 속 울림이 커지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우정’, 인류 보편적 감성

 


사실 <스토리>는 굉장히 미국적인 이야기입니다. 극 중 중요한 상징이 되는 멋진 인생’(스필버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프랑크 카프라의 걸작 영화)톰소여의 모험은 미국민의 보편적 감성을 대표하는 작품들입니다. ‘멋진 인생을 모르고서는 토마스를 영화 속 수호천사 클라렌스처럼 생각했던 앨빈의 토마스에 대한 애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조지 베일리와 달리 앨빈이 다리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의 수호천사 토마스는 없었습니다) ‘톰소여의 모험속 주인공 톰과 허크의 빛나는 우정(저는 이 소설의 주제가 우정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은 고스란히 유년시절의 토마스와 앨빈에게 투사되지만 소설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그 의미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왜 앨빈이 수많은 이야기들 중 톰소여의 모험을 택했을까?)


 

 

전형적 미국 문화의 적극적 인용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지만 크게 길을 잃을 위험은 없습니다.

우정’, 특히 유년시절의 우정은 전 세계인에게 통용되는 만국 공통의 감성 언어이기 때문이죠! <스토리>는 소박하지만 세련되게, 조용하지만 큰 울림으로 우정의 소중함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스토리>의 넘버는 아름답지만 스코어 자체가 도드라지기 보다는 이야기와 이야기의 정서를 보조하는 역할에 충실합니다. 이 영리한 선택 덕분에 이 작품의 드라마가 한층 유려하게 물 흐르듯 진행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세스 래밍턴’, ‘1876’, ‘나비’, 그리고 토마스와 앨빈의 마지막 이중창 등 모든 넘버(의 스코어와 가사)는 따스하고 편안하며 아름답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넘버는 세 차례나 등장하는 우리 이별할 때입니다. 이 넘버가 특별한 건 과거 이별 당시 토마스의 심정 이상으로 앨빈을 저 세상으로 영원히 떠나 보낸 현재 토마스의 슬픔이 강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와 앨빈’()

 

달콤한 미성과 정확한 딕션, 류정한씨의 당대 최고의 가창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컨디션 탓인지 7 11일 프리뷰 때는 다소 불안했지만 13일 오픈 공연에서는 바로 본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게다가 꼬마 토마스를 연기할 때의 앙증맞은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여성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듯 합니다(전 폭소를 터뜨렸지만 ^^) 하지만 성인 토마스 때의 지나치게 심각하고 드라이한 모습과 동숭극장을 울리는 정교한 가창은 전체적인 드라마와 유리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신성록씨의 토마스가 좀 더 느낌이 좋았습니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그의 매력적인 중저음이 류정한씨의 미성보다 더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조근조근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스토리>의 스타일 상 토마스는 저음의 배우가 맡았을 때 드라마적으로 더 강한 흡인력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성인 토마스의 표현에 있어서도 류정한씨는 작가라기 보다는 회계사 같은 느낌인 반면에 신성록씨는 슬럼프에 빠진 작가의 분위기를 잘 풍겼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인간적인 느낌.

 

 

작년 스프닝어웨이크닝이 조정석을 위한 작품이었다면 <스토리>는 이창용을 위한 작품입니다.

 

웃고 찡그리는 표정, 자그마한 동작, 귀여운 말투,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분위기 모두가 그야말로 특별한 아이, 괴짜 앨빈 그 자체였습니다. 표현력만큼이나 훌륭한 노래 솜씨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세스 래밍턴을 노래할 때의 따듯하고 귀여운 앨빈의 표정이 오랫동안 기억될 듯 합니다.

이석준씨는 앨빈보다는 앨빈의 아버지가 더 잘 어울릴 듯 합니다. 실제로 The Greatest Gift’에서 앨빈이 책을 찾아 주는 아버지 흉내를 낼 때 그게 흉내처럼 느껴지지가 않더라는 ^^;

이창용의 앨빈이 감수성 강한 괴짜 왕따 소년의 이미지라면 이석준이 표현하는 앨빈은 성장하고서도 철이 안 난 동네 형 같은 이미지랄까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인상입니다 ^^

 

뮤지컬 <스토리>에는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와 격렬한 감정의 부딪힘 같은 자극적인 장치는 없습니다. 그저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 놓을 뿐이지만 그 잔잔한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뭉클해지는 가슴과 뜨거워진 눈시울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두 번은 깜짝 놀랄 마법과 같은 순간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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