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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화, 공연(뮤지컬, 연극) 등 보고 끄적이는 공간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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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the 80’s, 실패한 시간여행

- 뮤지컬 웨딩싱어 review -

 

 

덤앤더머를 능가하는 뻔뻔한 무뇌아 연기로 일순간에 90년대 헐리웃 박스 오피스를 장악한 아담 샌들러는 화장실 코미디(우리 영화 색즉시공이나 몽정기를 상상하면 됩니다) 장르의 대가였습니다. 그의 성장을 거부하는 어른이라는 퇴행적 캐릭터는 덤앤더머의 짐캐리와 함께 90년대 남성상을 반영하는 아이콘이 되었죠.

영화 웨딩싱어는 아담 샌들러 성공시대의 서막을 알린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90년대 초반 헐리웃의 80년대 향수 상품 중 하나로 기획된 이 영화는 아담 샌들러 특유의 막가파식 코미디에 순진무구한 로맨스가 잘 믹스되어 대중의 큰 호응을 이끌었습니다. 그야말로 박명수의 노래, ‘바보에게 바보가가 주제가로 안성맞춤인 그런 영화였는데요.

이 막가파식 막장 개그로 무장한 황당한 순정 로맨스가 올 겨울 우리 뮤지컬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삐까번쩍과 쿵짝쿵짝

 

 

레이거노믹스의 호황을 누리던 80년대는 미국의 초절정 낙관의 시대였습니다. 팩스아메리카란 절대 반지로 무장한 람보와 코만도가 전 세계 극장에서 미국의 강력한 힘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었고, ‘뿅뿅기계음을 앞세운 컬쳐클럽, 듀란듀란, A-ha 등의 한없이 가벼운 댄스 뮤직이 대중들의 미의식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이었죠.

뮤지컬 <웨딩싱어>는 바로 이 시절,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20년도 넘은 호시절 미국 땅의 바보 같은 로맨스가 과연 지금 이 땅의 대중들에게 어떤 즐거움과 재미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의문과 우려가 있었습니다. (우리 뮤지컬 달고나진짜진짜 좋아해를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뮤지컬 <웨딩싱어>는 미국을 넘어 선 보편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소재의 작품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퇴행적 시간여행일지라도 삐까번쩍’, ‘쿵짝쿵짝 80년대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기만 한다면 또 하나의 유쾌한 캠프적인 뮤지컬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기대는 빗나갔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로비 하트가 소개되는 결혼 피로연 오프닝의 무대부터 80년대 미국의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좀 더 유치하고 뻔뻔하게 반짝반짝 휘황찬란했어야 했는데 마치 준비하다 만 학예회 무대처럼 허전한 느낌이었습니다. 80년대라는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무대 연출의 허술함은 마지막 줄리아와 굴리아의 LA 결혼식 장면까지 계속됩니다.

이건 괜한 트집이 아닙니다. 뮤지컬 <웨딩싱어>의 성패는 분명 촌스럽고 투박한 한편으로는 터무니없이 긍정적인 80년대 미국의 아우라를 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웨딩싱어 (상업적) 미덕인 80년대 분위기 재현에 실패한 뮤지컬은 엉뚱하게도 영화의 아담 샌들러 식 개그를 큰 고민 없이 그대로 차용하는 결정적 실수까지 저지르고 맙니다. (카메라라는 무기를 가진) 영화와 뮤지컬의 태생적 표현 특징의 차이를 무시한 말 개그의 성찬에 관객은 썰렁한 웃음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한국과는 다른 미국의 유머 코드 또한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줄리아의 사랑을 얻기 위해 굴리아의 직장에 찾아 간 로비가 앙상블과 함께 이 땅, 현재의 탐욕적 자본주의 세태를 노래하는 장면은 지나치게 직설적인 가사 탓으로 풍자의 맛도 덜할 뿐더러 전체적인 작품의 톤과 어울리지 않게 무겁게 연출된 느낌입니다.

 

 

뛰어난 배우, 캐릭터와 불일치

 

분명 황정민 씨는 뛰어 난 배우입니다. 성실하게 준비한 그의 춤과 노래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로비 하트 캐릭터는 아니었습니다. 로비 하트의 타고 난 순수함과 열정은 본의 아니게 뻔뻔한 상황을 만들기도 하며 의도하지 않은 웃음을 주어야 합니다. 왠지 황정민 씨의 로비 하트는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신파 주인공, 석중을 연상 시킵니다.

방진의 씨는 순진하고 아름다운 줄리아 역을 잘 소화했지만 줄리아의 캐릭터가 남성의 환상, 고전적 로맨스의 프리티 걸로만 그려진 것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좀 더 능동적이고 당찬 일면이 있어도 좋았을 텐데 여주인공답지 않게 너무 평이한 모습만 기억되네요. 이 아쉬움을 채우는 것은 윤공주의 홀리입니다.

 

 

자칫 천박함이 부각될 수도 있는 캐릭터를 윤공주스러움으로 밝고 유쾌하게 표현함으로써 사랑과 삶에 적극적인 홀리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제시됩니다. 그리고 로비의 친구 새미와 함께 열정의 랩 넘버로 큰 웃음을 선사한 로비의 할머니 로지 역의 양꽃님 씨, 역시 좋은 배우입니다.

 

 

무비컬의 경우 원작 영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함은 물론 무대에서 무엇을 강조하여 보여 줄 것인가 하는 명확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원작의 주제를 훼손하지 않고 뮤지컬만의 새로움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이죠.

히트한 원작영화에 대한 게으른 답습으로 연출된 뮤지컬 <웨딩싱어>는 성공한 영화를 뮤지컬로 재창조하는 일이 절대 만만한 작업이 아님을 보여 준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2009. 11. 29. 오후 3, 충무아트홀 대극장>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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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

- 뮤지컬 영웅 Review -

 

. . .

100년 전 중국 하얼빈 역에서의 역사(歷史)를 환기시키는 강렬한 총성과 기차의 굉음으로 뮤지컬 <영웅>은 시작됩니다. 막이 오르기 전 어둠 속 총성이 마치 지금부터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주세요!’라는 강력한 주문처럼 들립니다.

 

 

 

서른 한 살 청년 안중근

 

뮤지컬 <영웅>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이제는 위인이라는 호칭으로 역사 교과서에 화석처럼 굳어 버린 안중근이라는 백 년 전 인물은 이 작품을 통하여 피와 살을 가진 서른 한 살 청년으로 우리 앞에 현현(顯現)합니다.

 

자작나무 숲 단지동맹 결의 이후 이토 저격, 재판, 여순에서의 수감, 그리고 사형집행의 순간까지 역사적 사실의 숨가쁜 전개 속에서 관객들이 보고 느끼는 것은 안중근과 그의 동료들의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뜨거운 동지애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뮤지컬 <영웅> 속 안중근은 만리타국에서 고향과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친구를 따듯하게 안아 주는 가슴 뜨거운 젊은이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에 절절히 고뇌하며 다가 올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뮤지컬 <영웅>이 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가슴 벅차게 만드는 것은 인간 안중근의 모습이 성공적으로 객석까지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안중근과 의군 동료들이 함께 웃고 떠드는 유쾌한 왕웨이의 만두가게 장면과 의거를 앞두고 (두려움과 슬픔을 이겨내고) 모두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정겨운 장면이 다른 어떤 스펙타클한 장면보다도 기억 또렷한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영웅본색

 

 

관객들은 이토 암살 이후의 장면들에서 비로소 영웅 안중근을 목도하게 됩니다.

하얼빈 역의 총격에서 객석의 가장 큰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뮤지컬 <영웅>의 진짜 절정은 진짜 역사의 죄인이 누구인가를 논리정연함으로 당당하고 준엄하게 따져 묻는 재판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중근의 의거에 대한 국제법상 불법적인 재판에서 오히려 안중근이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이고 불법적인 범죄를 조목조목 따져 물어 기소하는 이 장면은 매우 역동적으로 연출되어 통쾌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순 수감 중 일제의 야욕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대동아공영이라는 (망령으로 나타난) 이토의 주장에 동양평화론으로 차분히 하지만 힘있게 응수하는 안중근을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의거에 정당함을 웅변합니다.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을 초월적 위인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리지 않고, 그의 인간적 면모가 보편적 인류애에 상통하는 철학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보다 큰 공감과 깊이 있는 감동을 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윤호진 연출의 전작 <명성황후>에서 스핀오프된 듯 한 설희의 이야기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단순한 민족주의 서사물이 아닌 역사를 살아 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려고 한 연출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참혹하게 살해된 주군의 복수를 다짐했던 그녀가 이안 감독의 영화 <색계>의 여주인공처럼 적에게 매료되는 서브 플롯은 이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를 혼란스럽게 만든 패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영웅과 색계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캐릭터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점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이토에 대한 극의 평가는 선명하지 않고 주저주저하는 느낌을 줍니다.

 

 

빼어난 완성도

 

이미 대다수 저널과 관객이 높은 평가를 했듯이 뮤지컬 <영웅>의 무대 연출은 국내 창작 뮤지컬의 수준을 몇 단계는 업그레이드 시킨 놀라운 스펙타클입니다. 특히 독립의용군과 일제 경찰의 추격 장면은 빼어난 군무와 무대 연출 아이디어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숨막히는 긴장감을 자아 냅니다.

 

개막 전 뮤지컬 <영웅>에 대한 높은 관심은 화려한 캐스팅에 대한 기대감에서 시작되었고, 출연배우들은 그 기대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류정한은 절제된 뜨거움으로 부드러운 모습이 보여 줄 때와 강한 신념을 표출할 때를 정확히 알고 연기함으로써 인간 안중근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합니다.(또 한 명의 안중근, 정성화의 연기는 어떠할 지 정말 궁금합니다) 김선영은 궐 안에서의 명성황후를 그리는 첫 노래로 소름 끼치는 감동의 전율을 안겨 주었고, 드라마틱한 요소를 더하기 위한 기능적 캐릭터로 많지 않은 출연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유일무이한 사랑의 발라드를 노래하는 링링 역의 소냐는 뛰어난 표현력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이 대작 뮤지컬에 대한 가장 큰 박수는 스펙타클하고 역동적인 무대 연출과 완벽한 시너지를 보여 준 앙상블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번 무대가 뮤지컬 <영웅>의 초연이라는 점입니다. 이 완벽한 공연을 위해 모든 배우와 스텝이 흘렸을 수많은 땀방울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계속될 뮤지컬 <영웅>의 진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 보겠습니다.

 

 

<뮤지컬 영웅, 2009. 11. 8() 오후 2, LG아트센터>

Posted by 다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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